2011년 어느 오후, 딜리의 한 식당. 옆자리 끝에 무심코 놓여 있던 작은 브로셔 하나가 필자의 시선을 잡았다. 표지에 박힌 글자는 단 한 줄이었다. “왜 쿠바의 의료서비스가 강한가?” 발행은 라오 하무툭(La'o Hamutuk). 테툼어로 ‘함께 걷는다’는 뜻을 가진 이 작은 싱크탱크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개발 사업을 가장 매섭게 감시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NGO(비정부 기구, non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사회주의 섬나라의 의료를 왜 강한가’라고 묻고 있었다. 식당 천장 선풍기가 한 박자 늦게 도는 소리를 들으며, 표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이 질문의 답을 만나려면, 딜리에서 차로 다섯 시간 떨어진 산 너머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야기는 2003년 2월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시작된다. 비동맹정상회의(NAM)의 한 조용한 회담장에서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의 사절이 마주 앉아 의료 협력의 큰 틀을 합의했다. 그 합의의 결과가 동티모르 산골 마을에 도착한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2004년 4월, 에르메라의 한 마을. 가까운 보건소까지 걸어서 한나절이 걸리던 그곳에 흰 가운을 입은 낯선
2013년, 딜리의 프레지덴치 니콜라우 로바투 국제공항. 한국으로 떠나는 동티모르 청년 한 명을 배웅하기 위해 가족 열 명, 때로는 스무 명이 청사 앞을 메웠다. 같은 구도, 다른 표정으로 셔터가 거듭 눌렸다. 청년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가족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활주로가 보이는 자리에 서서 기체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풍경은 1960~70년대 김포공항을 떠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현장으로 향하던 한국 노동자들의 사진과 50년의 시차를 두고 겹쳐졌다. 가족과 국가를 한 사람의 어깨에 실어 보내며 말없이 환송하는 공동체의 정서가, 다른 언어와 다른 피부색을 입고 거기에 있었다. 2008년 한-동티모르 고용허가제(EPS) 양해각서가 체결된 이래, 딜리 공항의 같은 장면은 한 세대의 집단적 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티모르 해외 노동의 흐름은 크게 영국-한국-호주-포르투갈 네 갈래로 나뉜다. 영국에는 포르투갈 국적 취득권을 활용해 옥스퍼드-피터버러-북아일랜드 던개넌 등의 육류가공-물류 현장으로 진출한 1만 6000~1만 9000명이 머무르며, 던개넌은 인구 대비 동티모르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
에르메라(Ermera)의 새벽은 커피 향으로 시작된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등성이에서 안개가 걷히기 시작할 무렵, 농부들은 이미 붉게 익은 커피 체리를 손으로 하나씩 따고 있다. 농약도 없고, 비료도 없다. 수십 년 된 커피나무가 야생에 가깝게 자란 숲 속에서, 인간의 손길은 수확의 순간에 닿는다. 이 장면은 소순다 열도 동쪽 끝, 인구 약 142만명의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의 현재다. 동티모르 커피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글로벌 커피 기업들과 세계 각지의 스페셜티 로스터들이 오래전부터 이곳 원두를 수입해왔음에도, 이 나라 이름은 커피 산지로서 좀처럼 대중에게 각인되지 않았다. 잘 보관된 커피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동티모르의 커피 역사는 19세기 포르투갈 식민 통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이 지역의 주요 수출품이던 백단향 자원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고갈되자, 포르투갈은 대체 작물을 모색했다. 옥수수와 사탕수수를 비롯한 여러 작물을 시도했지만, 척박한 고산 토양에서 끝내 살아남은 것은 커피뿐이었다. 특히 수도 딜리 남서쪽에 위치한 에르메라 지구가 커피 재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서늘한 고지대 기후, 화산
딜리(Dili)의 아우디안(Audian)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잠시 헷갈린다. 간판의 한자, 처마에 매달린 붉은 등,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은 세일 스티커. 이것이 동티모르의 수도인지, 아니면 중국 남부 어느 소도시의 변두리 골목인지. 선반마다 플라스틱 생활용품이 빼곡히 쌓인 가게 안에서 중국어가 오간다. 주인은 손님에게 테툼어로 가격을 말하고, 돌아서면 동료에게 그들만의 언어인 객가어(중국 광동성 동부·복건성 서부·장시성 남부) 방언으로 속삭인다. 필자가 동티모르에 거주하는 기간내내 해가 갈수록 중국계 가게는 늘었다. 티모르 현지인들의 소규모 상점은 줄었다. 그러던 어느날, 필자가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중국인 운영 상가 하나가 불에 탔다. 밤사이 연기가 피어올랐고, 다음날 새벽 검게 그을린 간판만 남아 있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다. 현지인과 관계가 나빠진 것이 화근이 됐다는 얘기가 설왕설래했다. 누가 불을 질렀다는 명확한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화재는 내게 단순한 사고 이상의 무언가를 알려 주었다. 상권을 잠식해 가는 중국인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불편한 시선, 그 눈빛이 연기 속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딜리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의 토론 자리를 함께하면, 두 개의 진영으로 갈리곤 하는 관점이 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Greater Sunrise)’를 두고 나오는 다른 어휘들이다. 한쪽은 '주권의 완성'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승자의 저주'라 부른다. 같은 가스전, 같은 파이프라인을 두고 왜 이렇게 다른 언어가 나오는 것일까? '주권의 완성'이란 논리는 이렇다. 파이프라인이 동티모르 남해안으로 연결되어 육상 LNG 플랜트가 세워진다면, 그것은 거대 인프라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1975년 인도네시아에 강점당하고 24년간 점령 아래 신음했던 나라, 2016년 UNCLOS 역사상 최초의 강제조정 절차까지 동원해 호주를 상대로 해양 경계를 되찾은 동티모르가, 마침내 자국 땅에서 자국 자원을 처리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 수익 지분 70%라는 숫자보다 훨씬 큰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다. 플랜트 건설 고용, 기술 이전, 관련 산업 클러스터, 젊은 티모르인들의 자국 일자리다. 이것이 진짜 독립 경제의 시작이라는 논리다. 구스망 총리가 수십 년째 이 입장을 꺾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자의 저주'론은 그 논리의 반대편을 파고든다. 티모르 해구, 가스전에서 동
“이것이 동티모르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정신이다.” 동티모르에서 “생명연금의 소급 취소를 결정한 규칙은 위헌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판결이 3월 26일나왔다. 라파(rafa) 등 현지 미디어에 따르면 자신타 코레이아 다 코스타 (Jacinta Correia da Costa) 항소법원 주심 판사 등이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2002년 제1차 국회 입법부가 시작된 이래 생명연금을 만들거나 승인하거나 규제한 모든 법 조항의 최소를 소급 적용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대통령, 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원 및 정부 구성원고 같은 이전 주권 기관의 연금이 포함되었다. 이 판결문은 “2002년 5월 20일부터 시행된 독립 회복일에 해당하는 법은 연재 및 미래의 연금 지급이 즉시 중단될 것”이라고 결정했다. 한편 계약 배정에 대한 보상을 받지 않기로 한 결정은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점을 고려, 일부만 위헌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9월 동티모르 대학생(EUTL)이 주도해 “의원들에게 월 생명 연금을 보장하라는 법을 재검토하라”며 국회앞에서 3일간 격렬한 항의를 했다. 9월 29일 호세 라모스-호르타 대통령은 “2002년 5월 20일 이후 소급이 적용 결정”이라고 정부에 합
동티모르 체류 초기 필자는 동티모르 정부 인사의 통역할 일이 있었다. 동티모르 정부 인사는 생각지 못한 질문을 불쑥 던졌다. "한국의 기술로 그레이터 선라이즈의 가스를 동티모르 쪽으로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 문장을 통역하면서, 이 나라가 그 가스전에 얼마나 깊이 기대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그레이터 선라이즈는 1974년에 발견됐고 당시 이미 수십 년째 개발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 안의 공기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미 실현된 희망은 바유운단(Bayu-Undan) 가스전이었다. 현지 공무원들은 산유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럴 만한 근거도 있었다. 석유기금(Petroleum Fund)만큼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제도였다. 2019년 전 세계 64개 국부 펀드 투명성·책임성 평가에서 세계 7위에 올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손실을 내지 않은 국부 펀드로 기록됐다. 규모가 아니라 원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원칙은 일찍 흔들렸다. 석유기금법이 정한 지속가능인출수준(ESI)은 기금 총자산의 3%였지만, 2008년 이후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9년부터 연평균 인출 비율은 법정 한도의 1.7배인 5
새벽 세 시. 하투 부일리쿠(Hatu Builico) 마을에서 손전등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순례자들이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해발 2,963미터. 티모르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조제 하무스-호르타(José Ramos-Horta)는 이 산을 두고 “죽은 자들의 영혼이 모여 천국으로 떠나기 전 머무는 신성한 산이며, 위기가 닥치면 돌아가신 지도자들이 평화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 표현했다. 이 성산(聖山)을 오르기 전,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혼란은 바로 이름이다. 어떤 지도에는 ‘라멜라우(Ramelau)’, 어떤 안내서에는 ‘타타마일라우(Tatamailau)’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정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지만 의미는 다르다. ‘타타마일라우’는 이 지역 원주민 언어인 맘바이어(Mambai)로 ‘모든 이의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수천 년간 불러온 이름으로, 한국인의 백두산과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반면 ‘라멜라우’는 이 봉우리가 속한 산맥 전체를 가리키는 지리학적 명칭이다. 독립 이후 동티모르인들은 조상의 언어를 되찾아 ‘포호 타타마일라우(Foho Tatamailau)’를 공식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