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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원의 동티모르 워치 11] “왜 메시가 아니고 호날두냐?”

17년간 정글 누빈 게릴라 사령관의 통치국 포르투갈 응원 풍경
‘인도네시아와 다르다’ 감정...국부 ‘샤나나 구스망’ 에우제비우 헌화

 

2016년 7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새벽 5시, 찢어질 듯한 오토바이 배기음이 창문을 흔들었다. 폭동인가 싶어 내다본 거리에는 초록과 빨강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동티모르 국기가 아니었다. 이 땅을 지배했던 식민 종주국, 포르투갈의 국기였다.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이 프랑스를 1-0으로 꺾던 그날, 딜리는 리스본보다 더 뜨겁게 울었다.

 

이 기이한 풍경의 정점을 찍은 건 다름 아닌 샤나나 구스망(Xanana Gusmão)이었다. 동티모르 독립 투쟁의 상징이자 초대 대통령인 그 국부(國父)가 거리로 나왔다. 양손에는 동티모르 국기와 포르투갈 국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식민 지배에 맞서 17년간 정글을 누빈 게릴라 사령관이, 옛 통치국의 승리에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모순 덩어리다. 왜 독립 영웅이 옛 식민 종주국의 깃발을 흔드는가? 필자도 이 장면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표면적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옆에 붙은 거인, 인도네시아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24년의 불법 점령 기간 동안 전체 인구의 최소 4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몬 인도네시아와 자신들을 구분 짓는 끈이 바로 포르투갈어, 가톨릭, 그리고 축구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네덜란드나 잉글랜드 축구를 볼 때, 동티모르는 보란 듯이 포르투갈 리그를 켠다.

 

이것은 절반의 답이다. 구스망의 깃발에는 더 깊은 무언가가 스며있다.

 

딜리 시내를 걷다 보면 3분에 한 번씩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만난다. 등번호 7번이 박힌 짝퉁 유니폼은 이곳 아이들의 피부처럼 자연스럽다.

 

나는 동티모르국립대(UNTL)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메시가 아니고 호날두냐?" 학생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메시는 타고났지만, 호날두는 싸워서 이겼잖아요. 우리처럼요." 마데이라 섬. 포르투갈 본토에서도 천대받던 그 작은 섬 출신이 세계를 정복한 것 아닌가.

 

 

아이들에게 호날두가 있다면, 구스망에게는 에우제비우(Eusébio)가 있었다. 2014년 2월, 총리 자격으로 포르투갈을 방문한 구스망은 공식 일정 중에 돌연 에우제비우가 뛰었던 벤피카티셔츠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에스타디우 다 루즈의 에우제비우 동상 앞에 꽃을 놓았다.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흑표범(Pantera Negra)’에게 바치는 헌화였다.

 

에우제비우. 모잠비크 빈민가 마팔라에서 태어나 신문지를 뭉친 양말을 공 삼아 맨발로 뛰던 소년.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식민지 혼혈이라는 낙인을 안고 18세에 바다를 건넜다. 그가 유럽 축구의 정상에 섰을 때, 호날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포르투갈 혼혈인이며 시인이었던 구스망이 동상 앞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2002년부터 동티모르 유소년 대표팀을 이끌어 온 한국인 김신환 감독을, 나는 '호랑이 감독님'이라 부른다.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감독님과 동티모르 축구는 참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축구공 하나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뛰는 아이들이니, 감독님으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렇네" 하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인구 140만 대 2억 8000만. 약 200배 차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인도네시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성인 A대표팀 공식 경기에서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2004년 김 감독의 유소년 대표팀은 일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6전 전승 우승을 해냈다. 독립 후 이 나라가 처음으로 거머쥔 국제 대회 트로피였다.

 

인구 70만의 반쪽 섬이 인구 2억의 거인에게 맞서 24년을 버텼고, 국제사회 대부분이 불가능하다고 봤던 독립을 쟁취했다. 그 부모들의 아이가 지금 흙바닥 위를 맨발로 뛰고 있다. 등에는 7번이 박힌 짝퉁 유니폼이 붙어 있고, 옆에서는 호랑이 감독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인구 200배의 거인을, 웃으며 맞서고 있다.

 

모잠비크 빈민가의 맨발 소년도, 마데이라의 말라깽이도, 정글의 게릴라 사령관도, 딜리 흙바닥의 아이들도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글쓴이=최창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hopeseller@gmail.com

 

 

최창원 프로필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위원

현, 아시아비전포럼 선임연구원

현, 한국스피치웅변협회 동티모르 지부장

전,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동티모르국립대 교수, 한국학센터장

전, UNDP 아름다운동티모르 만들기 프로젝트 자문관

한글 발전 및 한국어 세계화 공로로 대통령 표창(2025)

『테툼어–한국어 사전』, 『한국어–테툼어 사전』 동티모르 말모이팀 편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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