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초에 제기된 지정학 이론들이 21세기 국제질서에서 다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세 가지 렌즈가 있다.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의 심장지대론(Heartland), 앨프리드 머핸(Alfred Mahan)의 해양력론(Sea Power), 그리고 니콜라스 스파이크만(Nicholas Spykman)의 림랜드 이론(Rimland)이다. 매킨더는 유라시아 대륙의 핵심 내륙, 즉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세계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심장지대 접근로를 둘러싼 전략적 행동으로 읽힌다. 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역시, 방대한 자원과 내륙 연결성이라는 심장지대의 구조적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값싼 에너지와 전략적 완충을 필요로 하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제재를 받는 이란·북한이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며 ‘비서방 축’을 확대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머핸의 해양력론은 미국과 서방의 대응 논리를 설명한다. 금융, 해상교통로, 보험과 결제, 해군력과 동맹 네트워
1960년대 말, 한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을 먼 나라의 전쟁이 아닌 ‘우리의 전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해외 파병이 이루어지고 전쟁 소식이 매일 흘러 들어오던 분위기였다. 당시에 출판된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발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이공의 동물원에 가면 커다란 우리 속에 개 한 마리를 구경시키고 있다. 개가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모든 외국 사람에게는 우습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개가 구경거리가 될이만큼 귀한 짐승이 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역설(逆說)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야간에 몰래 잠행하기 마련인 게릴라의 행동에 개처럼 방해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게릴라의 비밀 행동대나 그 앞잡이들은 공격 이전에 개를 잡아 죽이기 마련이다. 또는 개를 잡아 죽이라고 마을 사람에게 통고하기도 한다. 그 통고는 바로 그 마을의 습격 예고로 받아들여진다. 어느 마을에서 개 그슬리는 냄새가 나면 그날 밤에는 총성이 잇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이같이 하여 개는 베트남에서 사양 동물(斜陽動物)이 되어 왔다. 二차 대전의 끝이 베트남 게릴라의 시작이고 보면 二 二년간의 기나
2025년 10월, 한국과 동티모르 사이에 두 개의 다리가 놓였다. 10월 9일 한글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이 한국어-테툼어 사전을 출간했다. 고려대 사전학센터와 동티모르국립대 집필진이 함께 완성한 두 번째 사전이다. 17일 뒤, 동티모르는 아세안의 11번째 정회원국으로 승인됐다. 제도의 다리와 언어의 다리가 같은 달에 완성된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은 동티모르에서 어떤 언어로 말해야 할까? 동티모르 딜리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곧 하나의 벽과 마주친다. 현지인과의 소통이다. 회의실에서 영어로 합의한 내용이 현장에 가면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중국인들은 이미 테툼어로 농담까지 주고받고, 미국대사는 부임 전 테툼어 연수를 마치고 동티모르인들과 직접 소통한다. 한국인은 의례 영어 통역사에 기댄다. 그러는 사이 업무 실행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우리는 동티모르가 조금씩 더 깊은 동반자가 되고 있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한다. 2024년 동티모르 중앙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액은 2억 4,480만 달러(약 3,612억 240만 원)로 비석유 GDP의 12~13%를 차지한다. 한국발 송금은 전체의 22%인 5,380
국제질서는 지금 공위기(interregnum)에 놓여 있다. 팍스아메리카의 균열은 분명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과도기에는 규칙이 느슨해지고 힘의 논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약소국과 중견국이 다수인 아세안에게 이는 가장 불안한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은 과연 원칙과 현실을 함께 반영한 ‘조용한 외교’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세안 외교는 오랫동안 비간섭, 합의, 점진성을 핵심 원칙으로 하는 아세안 방식(ASEAN Way)을 중시해 왔다. 요란한 성명이나 공개적 충돌을 피하고, 비공식 접촉과 시간을 통한 해결을 선호했다. 이는 이상주의라기보다 현실주의였다. 체제도, 국력도, 전략적 이해도 다른 국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서 최소한의 안정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국제규범의 구속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의 원칙은 점점 ‘신중함’이 아니라 ‘모호함’, ‘조용함’이 아니라 ‘침묵’으로 읽히고 있다. 남중국해, 미얀마 사태 등에서 반복된 무력감은 아세안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키운다. 원칙을 지키려다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로 비칠 위험
2010년 동티모르국립대학교(UNTL). ‘리더십의 단계와 성격’을 강의하던 날,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내 논리에 정면으로 맞섰다. 반박은 날카로웠고 눈빛은 형형했다. 설전은 종강 벨이 울려서야 멈췄다. 그날 밤, 누군가 자취방 대문을 두드렸다. 낮의 그 학생이었다. 땀에 젖은 채 숨을 고르는 모습에 항의인가 싶어 긴장했으나, 짐작은 빗나갔다. “교수님, 수업 시간엔 제 생각을 다 전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반대 의견을 가졌는지 설명드리고, 교수님 견해를 다시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우리는 현관 돗자리에 마주 앉아 어둠이 내릴 때까지 대화했다. 권위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왜’를 묻는 그 청년.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이 동티모르 민주주의와 만난 날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 세계언론자유지수 아세안 중 1위...숫자가 증명한 야성 그 학생의 당돌함은 우연이 아니었다. 2025년 국경없는기자회(RSF)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동티모르는 180개국 중 39위를 기록했다. 아세안국가 중에 차순위는 태국(85위), 말레이시아(88). 한국은 61위였다. 동티모르의 순위는 전년도 20위에서 크게 하락하긴 했음에도 동남아 1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치 환경,
껀터(Cần Thơ)시는 메콩델타(Mekong Delta)의 심장도시다. 호찌민시에서 남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곳에 있는 메콩델타 지역의 중심 도시다. 100여 년 전에는 서남부 지역의 수도라는 의미로 ‘떠이도(Tây Đô, 西都)’라 불리기도 했다. 껀터는 농산물과 과일,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후는 열대 몬순기후로 연중 고온다습하다. 연평균 기온은 약 28℃, 연간 일조시간은 2,249시간에 이른다. 농업에 매우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우기에는 홍수가 잦아 전에는 시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이 침수되기도 했다. ■ ‘껀터’라는 이름에 담긴 네 가지 이야기 껀터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응웬아잉(응웬 왕조의 태조)이 왕위에 오르기 전, 배에 타고 이 지역에 저녁 무렵 도착했을 때의 일화에서 비롯된 설이다. 강 양쪽에 배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등불 아래에서 노래와 시 낭송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에 감탄하여 이 강을 ‘껌티쟝(Cầm thi giang, 琴詩江)’이라 불렀는데, 이 ‘껌티’가 발음 변화로 ‘껀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과거 강변에 자우껀(rau cần)과 자우텀(rau
딜리(Dili)의 태양은 뜨겁고,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동티모르국립대학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바닷가에는 푸른 바다를 뒤로 한 채 그냥 서 있는 청년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활기 넘쳐야 할 청년기, 하지만 그저 서 있는 모습. 어딘가에 막힌 활기, 가슴에 자리한 막막함의 상징이다. 동티모르 정치는 1975년 인도네시아 침공에 맞서 정글로 들어갔던 이른바 ‘75세대’가 여전히 이끌고 있다. 샤나나 구스망, 마리 알카티리, 조제 하무스-오르타. 이 이름들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살아있는 신화에 가깝다. 그들이 권좌에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24년간의 무장 저항과 독립 쟁취라는 역사적 정당성, 국민 대다수가 부여하는 신뢰, 그리고 아직 그 무게를 대체할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후속 세대의 현실이 맞물려 있다. 다만 영웅들의 시대가 너무 길어질 때, 국가가 도약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현지에서 통용되는 ‘마운 보트(Maun Boot)’ 문화가 이 상황을 설명해준다. 테툼어로 ‘큰 형님’을 뜻하는 이 단어는 전쟁 시기에는 생존을 위한 위계와 존경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이 문화는 사회적 결속의 기제로 작동하는 한편, 세대 간 권력 이동을 더
요즘 나는 아침에 뉴스를 볼 때 동남아 기사뿐 아니라 중남미 뉴스에도 눈길이 간다. 아세안 소식이야 오래된 습관이지만, 중남미까지 챙겨보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12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미국은 중남미가 속한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최우선 전략 공간으로 명시했다. 국내외 언론은 이를 두고 ‘트럼프판 먼로주의’, 혹은 ‘트럼프식 먼로주의 추론’이라고 해석했다. 19세기 초, 미국이 아직 유럽 열강에 비해 힘이 약하던 시절, 중남미에 발을 들이려는 유럽 식민 강국들에게 “이곳에 오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 먼로주의였다. 이후 미국이 강대국이 된 뒤,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는 그 경고에 ‘행동’이 더해졌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루즈벨트 추론’이다. 그렇게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backyard)’으로 굳어졌다. 이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이 1959년 혁명 이후 공산국가가 된 쿠바를 지금까지도 장기간 경제제재해 온 이유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제3차 세계대전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