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세계는 핵전쟁의 문턱에 섰다. 미국 정찰기가 쿠바에서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는 인류 역사상 3차 세계대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공습이나 침공 대신 해상봉쇄(qurantine)라는 절제된 군사 조치를 선택했다. 그리고 13일간의 긴 협상 끝에 소련 지도자 후루시쵸프와 절충에 도달했다. 소련은 쿠바의 핵미사일을 철수했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동시에 미국은 비공개로 터키에 배치된 핵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다.
겉으로는 미국의 승리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대국 간 체면을 지키는 절충이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을 보면 이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미국의 군사 행동 이후 긴장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란에서는 강경 지도부가 등장했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되며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있다. 세계 증시는 불안정해졌고 에너지와 물류뿐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까지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전쟁이 길어질 경우 베트남전이나 아프가니스탄전처럼 장기적 수렁에 빠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현재 이란 사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강대국의 군사 압박이 상대의 체제 결속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압박은 쿠바가 소련과 더 밀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 이란에서도 외부 군사 압박이 오히려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에너지와 경제가 안보 위기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1962년 위기는 핵전쟁 위험이 중심이었지만, 오늘날 중동 위기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직접 흔들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세계 공급의 약 20%를 차지한다.
셋째, 결국 위기의 출구는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정치적 절충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역시 군사 행동이 아니라 상호 양보를 통해 해결되었다.
현재 중동 상황에서도 비슷한 선택지가 거론되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과의 종전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이란은 미국의 불침공 약속을 요구하며 협상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만약 이러한 조건이 협상의 핵심이 된다면, 그것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매우 닮은 장면이 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의 구조는 종종 닮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1962년 케네디는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절충을 선택했다. 그것이 핵전쟁을 막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 역시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군사적 압박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체면을 지키는 외교적 절충을 통해 위기를 마무리할 것인가.
그 선택은 중동의 미래뿐 아니라 세계 에너지 시장, 그리고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아세안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강대국의 위기는 종종 세계의 운명을 바꾼다. 지금 우리가 지켜보는 중동의 긴장 역시 그런 순간일지 모른다.
글쓴이=서정인 전 아세안대사 jisuh0803@gmail.com
서정인 전 아세안대사는?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 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