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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3] 베트남 작가 쩐반뚜언의 단편소설 ‘이웃’

쩐반뚜언, 종군기자로 활동, 아세안 문학상-문학예술 국가상 수상

 

아세안익스프레스가 계묘년(癸卯年) 신년을 맞아 베트남 소설 <열세 번째 나루(Mười ba bến nước)> <여행자의 전설>에 이어 <이웃(HÀNG XÓM)>을 싣는다.  작가는 사이공 해방지(Saigon Giai Phong)> 기자로 활동하였고, 부편집장을 역임했다. <편집자주>

 

이웃(HÀNG XÓM)

 

1994년 초에 바띠가 기르던 고양이가 갑자기 집을 나갔다. 바로 그날 아파트 물 펌프의 모터가 타버렸다. 1층과 2층에 있는 집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물 탑이 아파트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약하기는 했지만 2층까지는 물이 나왔다. 3층 이상에 사는 사람들은 불평이 대단했다. 경비원은 허허 웃으면서 “나는 그것이 타버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단지 놀란 것은 그것이 어떻게 그리 오래 견뎠냐 하는 것이다”라고 빈정거렸다.

 

그는 이미 석 달 전에 물 펌프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을 아파트 관리위원회에 경고했다. 관리위원회는 관계 기관에 보고하였다. 관계 기관의 담당 과장은 화가 나서 “그것은 이제 더는 우리 기관 소관 사항이 아니야! 타지방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아파트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택지관리국에 이관하는 공문을 보낼 거야”라고 말했다.

 

물 펌프의 고장에 대해서 관리사무소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몰라서, 1층 주차장 앞에 ‘각 가정은 스스로 물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람. 관리 사무소는 책임이 없음’이라고 벽보를 써 붙였다. 물 펌프의 고장으로 아파트는 아침저녁으로 마치 비 오는 날의 시골 장터와 같았다. 계단은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플라스틱 통과 철 깡통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깨에 멘 사람, 등에 진 사람, 손에 든 사람, 가지각색으로 땀을 흘리며 물을 긷고 있었다.

 

계단은 물에 젖고 복도는 물이 흘렀다. 먼지와 각 가정에서 흘러나온 하수가 섞여서 계단은 아주 지저분했다. 사람들은 농담하고, 남의 성질을 돋우는 말을 하고, 한숨을 쉬며 불평을 해대고, 어떤 사람들은 물 펌프에 대고 욕을 해대며, 관리 사무소의 무책임에 대해서 책망하였다. 몇몇 가정은 바띠의 고양이처럼 서둘러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

 

1층과 2층 사람들은 말은 안 했지만, 얼굴을 보면 그들의 속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타인의 곤경 앞에 행복해하는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수년 동안 그들은 아래층 사람의 설움을 참고 견뎌야 했기 때문이었다. 위층 사람들은 쓰레기를 그들의 머리 위에 버렸다. 그들은 닭장 씻은 물, 닭똥, 바나나 껍질, 수박 껍질…. 심지어 어린애 똥까지도 참아내야 했다. 이제 위층 사람들이 줄줄이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을 보고 그들이 속 시원히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어린애들은 좋아서 모두 밖으로 나왔다. 물이 떨어지고 나서 비로소 아파트 내의 모든 애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밖에 나와서 길바닥에서 목욕하고 집안으로 물을 날랐다. 정말 그들의 잔칫날이었다. 그들은 물 길으러 가면서 아주 유쾌하게 떠들 기회를 잡은 것이다. 큰놈은 큰소리로 노래 부르고, 작은 녀석은 작은 소리로 노래 부르며, 시합하듯이 물통을 메고 오르내리다 넘어지고 웃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런 것도 처음 3일뿐이었다. 4일째가 되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물긷는 일’이 이제 누구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1층과 2층 사람들은 3, 4층 사람들에게 자기들 머리 위로 물이 떨어진다고 불평하기 시작하였다. 애들도 역시 피곤했다. 그들은 오르내리는 것에 지쳐서 이제 다시는 떠들지 않았다.

 

맥주를 마셔서 코가 불그스레하고 귀가 크고, 배가 튀어나왔으며 으스대는 모습의 X기관(아파트 관리 기관)의 회계 담당 직원인 레짱은 통장 겸 아파트 관리소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는 25세 때부터 지금 40세가 될 때까지 이 직책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짱 나리’라고 불렀다.

 

그는 각 층 대표(그가 지정한)와 물 펌프 수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돈을 거두기로 합의하였다. 수리공이 와서 수리했다. 펌프는 이틀 동안 돌아가다가 다시 고장 났다. 사람들은 짱나리에게 질문을 했다. 짱은 수리공을 다그쳤다. 수리공은 “당신들 펌프는 미국이 군대를 다낭에 상륙시킬 때부터 있었다. 이제 30년이 지났다. 이곳을 고치면 저곳이 고장 나서 이제 더 수리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밍은 “수리공 말이 맞아! 그 고철 덩어리! 나를 주쇼, 순사에게 일러서 잡아가라고 할 테니!”라고 빈정댔다. 밍이 그렇게 빈정거릴 만큼 그 펌프는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짱 나리는 새 펌프를 사는 것을 협의했다. 찬성하는 집도 있었다. 그러나 주저하는 집에서는 ‘돈 내서 사 봐야 의붓아비 물건처럼 아무도 제대로 관리를 안 할 것이고, 고장 나면 고치고, 고치다가 안 되면 다시 사는 장난 같은 짓은 못하네!’라면서 반대했다.

 

짱 나리의 옆에 사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마케팅 직원인 쩐동 - 통상 사람들은 ‘동봉’(변덕쟁이)이라 불렀다 - 는 중국산 소형 물 펌프를 파이프에 연결해서 집으로 물을 퍼 올렸다. 사람들이 몰려와 파는 곳과 가격을 물었다. 즉시 사람들이 전싱(民生)시장으로 몰려가서 펌프를 샀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소형 펌프를 파는 가게가 모두 20만 동에서 25만 동으로 가격을 올린 것이었다.

 

밍은 이 가격 인상이 마케팅 동봉과 연결된 것으로 의심했다. 짱 나리도 그와 같이 의심하고, 갑자기 “사방으로 창녀 짓을 하고 다녀도 노후를 생각해서 한 곳은 놔두는 법이다. 같은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먹는 것은 더럽게 먹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동봉이 듣고는 “촌놈이라 시장경제도 모르는구먼. 당신 욕심부리지 마!”라고 욕을 해댔다. 그때부터 동봉과 짱 나리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내에서 동봉네가 가장 자식이 많은 집이었다. 5명이 될 때까지 연년생 혹은 3년에 두 명을 낳았다. 동봉의 부인은 전에 구(區) 상점의 판매원이었다. 국영 소매점을 축소하면서 상점이 해체되어 퇴직하고 행상을 했다. 이 다산(多産) 부인은 언제나 통통하고 불그스레한 볼에 눈이 감길 정도로 웃으며 천진스럽게 “날 때까지 낳지요, 상 받을 때까지 낳지요.”라고 말했다.

 

동봉은 성격이 이상해서, 어떨 때는 교활할 정도로 계산이 치밀해서 한 숟가락의 간장까지도 확실하게 하였지만, 어떨 때는 이름을 낸다고 창문을 통해 돈을 집어 던지듯 안하무인 하기도 하였다. 부인에 대한 사랑도 아주 변덕스러웠다. 사람들은 가끔 경박하게 웃는다는 죄로 그의 부인을 때리고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한스러움을 삭이기 위해 오랫동안 민요를 불러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이 그를 ‘변덕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사실은 그가 여자처럼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수년 전에 생활이 어려울 적에, 부인이 둘째를 낳았을 때인데 월급이라는 것이 아주 보잘 것 없어서 동봉은 다른 일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야간에 시클로를 몰면서 동봉은 귀신을 잡고 마귀를 쫓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음부 세계와 친밀한 관계가 있고, 염라대왕을 아저씨라 부르고, 제천대성(齊天大聖)을 큰형이라 부르며, 보살(菩薩)을 부모라 부르는 유명한 점쟁이를 알게 되었다.

 

동봉이 턱이 길쭉하고 입술이 갸름하며 목소리가 여성과 같이 낭랑한데다가 춥고 배고픈 환경을 불쌍히 여겨서 점쟁이는 제자로 받아들였다. 점쟁이는 동봉에게 혼다를 빌려주고 저녁때가 되면 점쟁이를 태우고 ‘사업’을 하러 다니게 했다.

 

그 당시는 사람들이 해외로 탈출을 많이 할 때여서 ‘탈출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생겨났다. 탈출자가 있는 가정은 불안에 떨며 안달하고 있었고, 소식을 알아보기 위하여 신령 세계를 찾아야만 했다. 동봉은 신선 혹은 음부 세계와 ‘교류’하기 위하여 동자(童子) 혹은 동녀(童女)로 분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 동봉은 수제(水齊) 공주로 분장해서 탈출자 가족에게 그들이 비록 풍파를 만났지만, 평안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점쟁이는 동봉에게 이러한 사기로 세상의 돈을 먹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고도 남았다. 고단수여야만 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바다의 날씨 변화와 세계 지리, 고객의 심리까지도 통달해야만 했다.

 

사람들이 줄이어 점쟁이에게 오는 것은 그들의 친척의 안전에 관해서 희망을 키우고, 믿음을 더 확고히 하자는 것이었을 뿐이며, 경찰과 대면하는 것을 아주 많이 겁냈다. 사부는 동봉에게 그것을 아주 분명히 가르쳤고 그래서 그는 자기의 역할을 아주 천천히 진행했다. 손님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에 애가 타서 안달했지만 동봉은 바다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수제 공주를 찾지 않고 있었다. 손님이 더는 기다릴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리게 해 놓고 엄숙한 목소리로 “내가 지금 바쁜데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하시오?”라고 입을 열었다.

 

동봉은 언제, 몇 시에, 어디서, 몇 명이, 어떤 배로, 어느 쪽을 향해서 탈출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묻고는 “내가 경도 몇, 위도 몇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폭풍(또는 해적)을 만났는데, 내가 고래를 시켜서(상어가 해적을 막았다) 폭풍을 막았고, 이제 그들은 안전하다….”라고 판결을 내렸다. 만일 손님이 더 자세한 것을 질문하면 동봉은 “나는 내 왕국에서 일어난 일만을 알 뿐이고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은 알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혹은 손님을 요령 있게 쫓아내기 위해서 동봉은 남자 목소리로 바꿔 “나는 고래 장군입니다. 공주에게 삼가 시간이 다 되었음을 통보합니다. 게다가 밖 골목에 경찰이 오고 있소!”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절체절명의 칙령과 같아서 어떤 손님도 감히 다시는 자세히 물을 수 없었다.

 

사부가 ‘동봉’에게 이러한 일로 돈을 벌어먹게 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 이 사업도 ‘조각’났다. 사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조사를 받고 다시는 천하를 사기 치는 미신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동봉은 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사부가 그는 아는 사람으로서 사주와 풍수지리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러 온 사람이라고 방어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동봉은 충성스러운 제자로서 사부에게 감동했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별해야 했다. 많은 돈을 번 것 외에도 그는 사부로부터 각계각층 고객의 기호와 변화,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것 등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부가 그에게 전해 준 가장 구체적인 것은 사주, 풍수지리, 역경 및 중국어에 대해서 깊이 알게 해준 것이었다. 실제로 사부가 그에게 한문을 직접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사주와 주역, 풍수지리에 빠져서 동봉은 쩔런에 있는 한약방에서 한문을 공부하는데 3년을 바쳤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 지식을 즉시 써먹을 기회가 찾아왔다. 한 홍콩회사가 그를 월급 300달러에 마케팅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었다. 동봉은 자신의 마케팅 능력과 판매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잡았고, 사장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 그 외에도 그는 꽤 높은 수입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풍수지리(건축이나 내부 공사를 할 때)와 사장들이 직원을 뽑을 때 관상과 사주를 보아주는 일이었다. 홍콩과 대만의 일부 사업가들은 풍수지리와 사주팔자를 아주 많이 중시했으며, 그것은 일찍이 베트남 사업가들과 베트남에 있는 화교들에게 전해졌다.

 

거의 일 년 동안 동봉은 주야로 아주 바쁘게 살았다. 그는 일찍이 삐삐를 찼으며 또한 휴대폰도 갖게 되었다. 생활은 날로 윤택해져 갔다. 그의 자식들은 오락할 컴퓨터도 갖게 되었다. 동봉의 부인은 시장에 자신의 가게도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는 현찰을 주고 단독주택을 샀는데, 외국인에게 세를 줘서 매달 수백 달러씩 받느라고 이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봉은 부유했지만 매달 전기세로 12만 동을 내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동봉은 서둘러서 전선을 가져왔다. 그의 집은 4층에 공급되는 전선과 가까이 있었고, 전선 두 가닥에는 틈이 있었다. 힘들이지 않고 그는 외부 전선에서 계량기를 통하지 않고 전선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당연히 안전하게 해 먹기 위해서 그는 매달 80㎾만 빼먹었고, 나머지 80㎾는 계량기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매달 4만 동에서 6만 동의 전기세만 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이 교묘한 전기 도둑질이 전기 회사 직원에 의해 발각되어 현장을 잡힌 것이었다. 동봉은 부인에게 처리를 맡기고 도망갔다. 동봉의 부인은 자식은 많고 집은 가난해서 국가의 전기를 좀 빌려 썼을 뿐이며 결코 고의로 도둑질할 의도는 없었다고 사정했다. 전기 회사 직원은 그녀에게 감화되어 사정을 이해하고 50만 동의 벌금으로 끝냈다.

 

동봉은 짱 나리가 전기 도둑질을 고발했다고 의심하고는 자식을 시켜서 쓰레기와 고양이 똥을 짱 나리 집 복도에 버리도록 했다. 가끔 동봉의 아내도 그쪽에 대고 “빌어먹을 놈, 배신자! 서로 같이 도둑질해 먹는 처지에 누가 더 깨끗하다고 지랄이야!”라고 욕을 해댔다. 사실은 짱 나리 집에 계량기가 없을 때 동봉이 전기 도둑질하는 것을 도와주었었다. 계량기가 설치된 다음에도 짱은 계속 도둑 전기를 썼으나 후에는 겁이 나서 다시는 도둑 전기를 쓰지 않았다. 짱의 아내는 동봉의 아내와 같이 시장에서 장사했으나 운수가 사나워 손해를 봤고, 동봉을 미워해서 가끔 ‘사기 쳐서 부자 된 도둑놈!’이라고 빈정댔다.

 

짱 나리 부부는 동봉의 전기 도둑질에 대해서 죽기를 맹세하고 고발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동봉 부부는 믿지 않고 계속해서 쓰레기와 똥을 짱 집앞에 버렸다. 짱의 아내는 미칠 듯이 화가 나서 동봉 아내의 머리채를 잡고 계단에서 폭행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두 여자가 치고 패는 모습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일이 벌어진 것은 오후 4시경으로, 짱 나리와 동봉이 귀가하기 전이었다. 제대한 포병 출신의 호루라기와 찐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격전은 오래 끌지 않았고, 심각한 부상도 없었다. 그들은 아직은 옷을 찢는다든지 얼굴을 할퀴는 행동은 삼가고 있었다. 그 후 파출소에서 순경이 나와 짱나리와 동봉에게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한다는 서약을 받아 갔다.

 

두 남자는 싸우지 않았지만 바로 그 다음날 두 집에서 계단까지 이르는 복도에 벽을 쌓았다. 바로 이 벽 때문에 아파트에서는 자주 물이 넘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벽이 길을 막고 있어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각 가정의 물파이프는 부지중에 혹은 고의로 서로 엉기게 쌓아 놓았고, 그곳은 쥐들이 장난하고 이빨을 시험하는 곳이 되었다. 각 층의 풀 파이프가 터지지 않는 날이 없었고, 서로서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느날 도안짱은 이유 없이 레홍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도안짱은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불렀으며, 항상 직장의 문예 발표회에 참석했고, 자신의 노랫소리가 마치 신문에서 유명한 가수들을 칭찬하듯 강력한 호소력이 있다고 느꼈다. 어느날 길가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도안짱은 레뚜엣에게 자신의 노랫소리에 대해서 속삭이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레홍을 흘겨보고는 분명한 어조로 “내가 원하지 않아 서지, 여러 곳에서 나를 직업 가수로 초청하고 있어! 내가 노래하면 아주 완벽히 제대로 하지 노래는 대충하고 엉덩이만 흔들어 대는 ‘짜가’ 들과는 다르지.”라고 말했다.

 

레홍은 도안짱의 뼈 있는 말에 놀랐다. 왜 도안짱이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서쪽에서 뺨 맞고 동쪽에서 눈 흘기는 격이라고 의심했다. 도안짱의 남편이 그녀가 식당에서 부른 ‘파라다이스’라는 노래를 듣고 그녀에게 5만 동의 팁을 준 이야기를 레뚜엣이 떠벌렸다고 생각했다. 그날 식당에는 도안짱의 남편의 손님들과 레뚜엣 부부가 있었다. 도안짱의 남편은 ‘파라다이스’ 곡을 불러 달라고 사정을 했고, 다시 뛰어와서 레홍의 손을 잡고 “당신은 나의 꿈 같은 첫사랑을 회상하게 해주었소”라고 말을 하였다.

 

그는 레홍의 손을 잡고는 억지로 팁을 주었다. 레홍은 거절했다. 두 사람은 서로 밀고 당겼다. 레뚜엣이 나가서 말리면서 “얼마 안 되니 받는 것이 좋겠네….”라고 말했다. 레홍은 슬펐다. 손님이 가수에게 팁을 주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고 주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받아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웃집 남자이고, 오가며 만나는 사이에 팁을 받는다는 것이 어색했다. 결국 그녀는 받았고, 언젠가는 그에게 다시 돌려준다고 생각했었다.

 

의심받는다는 생각에 레홍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남은 음식을 빨리 먹고는 자리를 떴다. 그녀는 슬펐다. 사실은 레홍에게 준 팁에 대해서 그 남자는 자기 부인에게 바로 말했었다. 도안짱은 그 일에 대해서 전혀 화를 내지 않았었다.

 

그녀가 레홍을 미워한 것은 그녀의 옛사랑이며 다루기 힘든 시인이며 기자이고 음악가인 부이끄엉이 바로 그녀 앞에서 레홍의 목소리를 칭찬한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안짱의 물파이프가 터져 복도로 물이 샐 때 세상에 대고 욕을 해대며 도안짱은 레홍의 머리에 물을 끼얹으면서, 그녀가 고의로 부쉈다고 몰아붙였다. 두 사람이 시끄럽게 다투는 과정에서 바로 식당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도안짱의 남편은 아내의 따귀를 때리고 집으로 끌고 올라가야만 했다.

 

그 싸움이 있고 난 뒤, 레홍은 더욱더 슬펐다. 그녀는 딸에게 “가수 생활은 아주 힘들단다. 차후에 엄마 직업을 따를 생각은 마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 살배기 고집 센 어린애는 “단지 엄마만 힘들 뿐이지 다른 가수들은 공주나 왕후처럼 살며 말할 수 없이 부자이고, 신문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잖아요!”라고 대들었다.

 

그러고 나서 어린애는 치마를 엉덩이에 걸치고는 요염한 자세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내 인생은 고독해. 그래서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고독해….”하고 노래를 불러댔다.

 

레홍은 경악해서 자식을 바라보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고 올라 더는 평정을 지킬 수 없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식을 때렸다. 부지중에 따귀를 한 대 때린 것이다.

 

“당장 그만둬! 누가 너에게 그런 노래를 가르쳐 줬지…?” 어린애는 울지도 않고 놀라서 물었다. “왜 때려요? 그 노래는 엄마가 식당에서 지금도 부르는 노래잖아요? 자식이 엄마의 노래를 못 부른다는 법이 있어요?” “어 저런!” 레홍은 숨이 막혀 얼굴을 묻고 오열하였다.

 

어린애가 “엄마, 제가 있잖아요. 커서 제가 부자 가수가 될게요. 엄마는 이제 노래하러 다니지 마세요. 제가 엄마를 돌볼게요.”라고 하면서 위로했다.

 

레홍은 더욱더 큰 소리로 울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레뚜엣, 이웃 사람이었다. 레홍은 다시는 레뚜엣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뚜엣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을 같이 울었다. 그러고 나서 웃었다.

 

번역: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배양수가 만난 쩐반뚜언(Trần Vǎn Tuấn) 과  단편소설 <이웃>은?

 

쩐반뚜언(Trần Vǎn Tuấn)은 1949년 3월생으로 하남성 출신이다. 1970년에 입대해 베트남전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다가 통일 후 제대하여 남부 문예지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캄보디아 전쟁이 터지자 다시 입대하여 캄보디아에 파병되었다. 전역 후 <사이공 해방지(Saigon Giai Phong)> 기자로 활동하였고, 부편집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는 베트남 문인회 호찌민지회 회장(2015~2020)을 역임했다.

 

1985년 <다리 옆 골목>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이후로 30여 권의 소설, 단편, 수필을 발표했다. <맑은 물의 성스러운 숲>으로 베트남 문인회 소설 부분 1등 상(2005), 아세안 문학상(2007), 문학예술 국가상(2012)을 받았다.

 

필자는 그를 <사이공 해방지>의 부편집장을 할 때 처음 만났다. 너무 바빠서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만났다.

 

대화 중에서 수시로 기자들이 찾아와 기사의 승인을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던 일이 인상적이었다. 베트남 신문 기사의 최종 책임은 기사 승인자가 지기 때문에 상당히 고된 직업이다.

 

여기 소개하는 <이웃>은 1996년 2월 25일자 <사이공 해방지>에 실린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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