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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2] 베트남 작가 도티투히엔 단편소설 ‘여행자의 전설’

도티투히엔(Đỗ Thị Thu Hiên)...베트남 공산당 온라인 신문 첫 여성 부편집장

 

아세안익스프레스가 계묘년(癸卯年) 신년을 맞아 베트남 소설 <열세 번째 나루(Mười ba bến nước)>에 이어 <여행자의 전설>을 싣는다. 주간 <문예지>에서 뽑은 2002년 우수 단편작이다. 작가는 베트남공산당 홈페이지 문예 담당 부편집장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고등학교 졸업시험이 막 끝났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절에 사는 동자는 오직 보리수 나뭇잎만 치울 줄 안다. 너는 엄마를 거울 삼도록 해라. 평생 남자를 훔쳐간 여자라고 비난받았다. 자식도 여러 종류이고, 모두 나를 엄마라고 불렀지만, 속으로는 칼로 찌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놈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내 무덤에 풀이 파랬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운송조합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말이 운송업이지 실제로는 매일 물소 수레를 끌고 군청에 가서 소금, 액젓, 성냥, 전등을 받아서 면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웃통을 벗어 윗도리를 배에 둘러매고, 수레에는 물바가지와 도시락을 느슨하게 걸고는 안 다니는 곳이 없었다. 멈추는 곳이 집이요, 눕는 곳이 침대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혼기를 놓친 처녀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오빠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올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누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올케를 미워했지만, 오빠를 생각해서 그녀의 어머니는 길가 언덕배기로 나가서 음료를 파는 가게를 열었다.

 

물소 수레꾼이 반달에 두세 번 이곳에 들러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셨다. 돈을 내는 대신에 소금 포대에 파이프를 박아서 소금 몇 킬로그램을 빼내거나 액젓을 뽑아서 지불하고는, 액젓 통에는 맹물을 채워 넣었다. 그 소금과 액젓이 차와 담뱃값이었으며 남는 것은 혼기를 놓친 여주인의 웃음값으로 주었다.

 

둘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귀게 되었고, 며칠만 물소 발소리와 덜컹거리는 수레바퀴 소리를 듣지 못해도 그리워했다. 그 둘은 후에 강산에 맹세하고 부부가 되었다. 그래서 그곳은 이제 수레와 그 주인이 머무는 여인숙이 되었다. 수레꾼의 아내와 자식들이 찾아와 가게를 때려 부술 때, 그녀의 어머니는 넘어졌고, 임신 중이었다. 수레꾼은 그의 말대로 상처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인과 네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엎드려 애원하였고,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운 좋게도 둘째 부인, 유랑하는 수레꾼의 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아주 작고 주름진 모습으로 태어났다. 더하다 보탠다는 뜻의 “탬”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으로, 그것은 마치 그녀의 일생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두 모녀는 기울어진 언덕배기 가게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고, 매주 한 번씩 숲 쪽을 쳐다보면서 딸각거리는 물소 발소리를 기다렸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베푸는 수레꾼의 은총은 여전히 이미 여러 번 뽑아먹고 물을 탄, 몇 킬로그램의 소금과 액젓이었다. 그녀의 선물은 서둘러 품에 안기는 것이었는데, 담배 냄새와 찌든 땀 냄새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기뻤고 자랑스러웠다. 그녀는 가난한 몇 명의 동네 아이들에게 수레 위 소금 포대에 올라가 앉도록 선심을 베풀었고, 파랗고 빨간 기름종이로 싸인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그녀를 바라보면서 침을 흘렸던가!

 

그러나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슬픔이 따라다녔다. 어렸을 적 밤에 졸릴 때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한쪽은 아버지 한쪽은 엄마! 맘대로 이쪽으로 돌아누워도 저쪽으로 돌아누워도 사랑하는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으니. 그녀는 한 발은 아버지에게 한 발은 어머니에게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졌다. 한밤중에 깨어난 그녀는 정신없이 울어댔다. 사랑방 대나무 침대에 혼자 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알게 되었다. 그녀가 잠이 들면 그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다가 바깥 침대에 눕혔다는 것을. 다음번에 그녀는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잠이 들지 않으면 감히 누가 그녀를 옮겨놓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눈꺼풀이 내려왔고, 아침이 되면 그녀 혼자였다. 만일 수레꾼이 일주일에 두 번 온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화가 났고, 그를 죽도록 미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왔고, 어린애의 화는 사흘이 지나면 풀렸다. 그러나 외롭고 슬픈 느낌이 그녀의 맘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에 그녀가 슬플 때면, 어렸을 때 옮겨졌던 느낌과 자주 비교하게 되었다. 그녀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수레꾼이 은퇴했는데, 이는 그녀에게서 아버지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름다운 날들은 물소의 발소리-그녀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같은 마을에 사는 군의 상업회사에서 운전사를 하는 미엔에게 시집가라고 했다. 미엔은 그녀가 예뻤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 했고, 예뻤기 때문에 그녀의 집안 내력을 덮어두었다. 그녀는 대학 시험을 치고 싶었고 게다가 같은 반 친구인 반을 좋아했다. 이 일로 그녀는 어머니와 다투었고, 어머니는 펄펄 뛰었다.

 

“평생 네 어미는 굴욕을 받았다. 온 마을이 분뇨를 뿌렸고, 그 자식들도 돌을 던졌다. 네가 그와 결혼해야만 네 어미의 굴욕을 씻을 수 있다.”

 

그녀는 눈물에 젖었고, 어머니는 소리쳤다.

 

“네가 아직 이도 닦을 줄 모르는 그런 애새끼와 결혼한단 말이냐? 아이고! 귤을 열 번 수확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해도 그놈 물건은 우리 밭에 있는 고추보다도 작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을의 절반은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눈물을 비 오듯 쏟았다.

 

결국 그녀는 마을 처녀들 반 이상의 우상이었던, 미엔과 결혼했다. 참을 만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미엔과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 어머니의 굴욕과 아픈 과거를 위해 결혼했다. 그렇다면 그 대가가 작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보통의 신부들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큰 소리로 웃으면 인사를 했고, 17년 전의 수레꾼 얼굴은 그 복수의 날에 나타나지 않았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어머니가 되었다.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아기를 안고 해먹에 누웠고, 두 사람이 해먹을 메고 보건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문밖으로 뛰어나와 미엔 여동생의 손에 있던 보온병을 잡아채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씨앗 좀 보자! 제 아버지를 똑 닮았구나!”

 

미엔은 일하러 갔고, 가끔 혹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집에 들렀다.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침묵하고 밥맛을 잃었지만, 여전히 먼 길을 오가는 남편의 더러워진 옷을 빨았고 남편을 섬겼다. 한 번은 남편의 호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는 주머니를 뒤져보니 콘돔 몇 개가 나왔다. 그녀는 그것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미엔은 아주 귀중한 그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탁자 위의 물건을 보고 나서 미엔은 주머니를 뒤지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제일 잘 났다. 개 코를 가졌는지 못 찾아내는 것이 없어! 귤껍질을 잘 벗기려면 손톱이 길어야지. 에이즈나 문둥병 걸려서 우는 것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지.”

 

그녀가 거위처럼 못 들은 척하자 미엔이 말했다.

 

“운전사들이 그런 거지. 이해해라! 나는 앞가림은 확실히 한다!”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자 종일 뒤뚱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하루는 밥을 짓다가 아이가 보이지 않자 이웃집에 갔다고 생각하고는 놀라서 찾아나섰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문 앞을 지나가던 행인이 그녀의 집 앞에 있는 석회 구덩이에 어린아이 옷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그녀는 달려와서 기절했다.

 

그 석회 구덩이는 집을 짓고 나서 생긴 것으로 그녀가 몇 번이나 미엔에게 치우라고 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미엔이 흘려들었다. 그리고 전날 비가 와서 그 구덩이에 물이 찾던 것이다. 아이는 얼굴이 창백하고 배가 쑥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열흘 동안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열 하루째가 되었을 때, 미엔이 돌아왔고 얼굴을 붉히면서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리채를 잡힌 채 수없는 주먹질과 발길질 앞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종국에 미엔은 그녀의 가방을 싸서 마당으로 던졌고, 그녀의 어머니는 울면서 사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운한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고, 법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결혼할 때 그녀는 혼인신고를 할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주막의 사발과 같은 것으로 흠이 없다고 하더라도 흠집을 잡히게 마련이었다. 결혼 전의 그 많던 장점들은 이제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녀의 흠이 너무 커서 수십 킬로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 얘기를 하며 경계로 삼았다. 그녀는 미엔을 사랑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 아픈 것은 갑자기 빈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한밤중에 그녀는 자주 아이가 문을 두드리는 상상을 하며 소리쳤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곧 미쳐버릴 것 같다고 생각해서 무당을 불러서 귀신을 쫓는 굿을 했다.

 

한창 자라는 나무와 같았던 어린 시절에는, 비록 가지치기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상처가 아물기 마련이었다. 육체는 그렇지만 정신은 달랐다. 그녀는 비록 배꼽을 자른 곳이었지만 더는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만일 계속 머문다면 그녀의 어머니보다도 더 불행할 것이었다.

 

그녀가 접시 주위를 맴도는 개미처럼 방황하고 있을 때 수레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기 전에 그는 본처의 자식들에게 그녀를 찾아서 장례에 참석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었을 때 의리가 진정한 의리인지라 그 자식들은 그녀의 어머니를 미워했던 것이지 그녀에게 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녀에게 연락했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으로 혈육의 정을 시험하고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만남은 비록 슬픈 분위기 속에서 벌어졌지만, 그것은 달콤하고 따뜻했다. 본처의 자식 중에는 도시에서 조그만 공장을 하는 집으로 시집간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자매의 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장례식 후에 그녀는 언니를 따라서 하노이로 갔다.

 

그녀는 마치 송아지가 길을 잃고 바닷가로 나간 것과 같았다. 도시 생활은 번화하고 아주 매력이 있었다. 언니 집은 식구가 많았다. 일하는 사람도 많아서 시장 보는 일과 스무 명의 직공을 위해 밥 짓는 일뿐이었다. 본래 솔직하고 근면하며 음식을 잘 만들 뿐만 아니라 시장 볼 때도 돈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도시의 땅은 촌사람을 더 가치 있게 만들었다. 일 년도 안 되어서 피부는 뽀얗고 볼과 입술은 붉어졌으며 몸은 윤기가 흘러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보였다.

 

이웃들은 ‘이 집은 참 깔끔한 애를 구했어! 마치 미스 베트남같이 예뻐’라고 칭찬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언니의 귀에 대고 ‘식모를 저렇게 깨끗한 애를 고르다니!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이야! 호박이 넝쿨 채 굴러온 것이지!’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언니는 놀라서 눈을 찡그리며 ‘내 동생이야. 농담하지 마!’라고 말했다. 다음날 언니는 그녀에게 긴 잠옷을 던지면서 입으라고 했다. 그녀는 즉시 입고 있던 짧은 치마를 갈아입었다. 그 치마 역시 언니가 버린 쓰레기였다. 여자가 조심성이 있어야지. 허벅지 드러내 놓고 다니면, 형부가 있어 불편하였다.

 

어느날 밤 언니는 그녀를 불러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물어보마. 네 어머니는 평야 지역 사람인데 산에 개간하러 간 것이냐. 아니면 본래 그곳 사람이냐?”

 

그녀는 놀라서 언니를 쳐다보았다. 언니는 부드럽게 꾸짖었다.

 

“내가 물어보는 이유는 네가 대학에 간다면 우선 선발 대상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내가 듣기에 너 공부를 잘했다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커트라인 점수에 가까운 점수와 출신 지역 우대점수를 합하여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그녀는 인생에 운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녀는 클래스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다. 다른 학생들보다 세 살이 많았는데, 겉모습만 보고 그것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언니의 헌 옷만 입었을 뿐인데도 식당에서 기숙사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동안인데도, 수백 개의 갈망의 눈빛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것만 보면 한때 그녀가 길도 건널 줄 모르는 시골 처녀이고, 발바닥은 갈라지고 얼굴은 한약방에 있는 말린 중국 사과처럼 검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그녀의 방에는 손님으로 붐볐다. 일반 청년들도 있었고, 같은 학교 학생,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있었다. 꽃과 함께 하천에서 물이 흐르듯 하는, 날개 달린 아름다운 말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시를 읊는 청년도 있었고, 애간장을 태우는 통렬하고 달콤한 사랑의 노래를 기타 치는 청년도 있었다. 결국 그 방에 있던 여학생반 이상이 그 우아한 청년들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녀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몰랐다. 그녀에게 사랑은 이미 죽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애정을 나타내는 그림자의 휘황찬란하고 지루한 모습에 싫증이 났다. 그녀는 자신의 멀지 않은 과거를 알고 나서도 누가 남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무감각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주위에 있던 청년들이 지쳐 있을 때 '데'가 나타났다. 덩치가 크고 검으며 우둔해 보였다. 한 친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친구 아무것도 몰라. 열일곱 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고, 십오 년 만에 비로소 동포를 다시 보는 것이니 잘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봐줘라!”

 

그녀를 만나고 나서 데는 최면술에 걸린 것 같았다. 밤마다 찾아와 무화과나무를 심었고, 밤늦게 돌아갔다.

 

“데는 독일에서 뭐 했었어?”

 

“봉제공!”

 

“귀국해서 뭐 하려고 했는데?”

 

“아직 몰라…….”

 

처음에는 그가 웃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계산하고 있었다. 데는 착하고 외국도 갔다 왔고, 그녀의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데는 하노이 토박이이고, 결혼하면 졸업 후에 취직할 필요도 없으며, 특히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 나쁜 기억이 있는 -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녀는 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데의 겉모습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한 친구들 열 명 중이 열 명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데하고 결혼하지 마라, 너 평생 고생할 거야! 그는 겨울잠을 자는 곰과 같아! 너 조심해라!”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미엔에게 알려진다 해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바로 미엔이 그녀를 길바닥으로 내쳤고,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누구와 살든지 오히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번 데를 문밖까지 배웅했었다. 한 번은 데가 그녀를 갑자기 끌어당겼다. 그녀는 데의 가슴에 기대어 눈을 감고 키스를 기다렸다. 그에게 끌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표현 방법이었다. 비록 썩 좋아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갑자기 그녀에게서 인간미가 솟아났다. 데가 작고 부드러운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말했다.

 

“나와 결혼해줘!”

 

그녀는 어리둥절한 채 방으로 뛰어와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웃었다.

 

그녀가 졸업논문을 쓰고 있을 때는 이미 임신한 지 한 달이 넘었을 때였다. 데는 비록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그녀를 정식으로 옭아맬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예민해졌고 데에게 결혼을 취소하고 싶지 않다면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다. 데는 너무나 안심했기 때문에 새벽의 복통과 논문 쓰는 수고를 그녀에게 양보하고 집에서 편하게 잠을 잤다.

 

학생 시절 그녀는 수천 번도 더, 그 붐비는 학생 식당에서 열심히 밥을 먹었다. 여름인데다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몹시 피곤해 있었다.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등을 건드리는 것이 있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등을 건드린 자는 작은 식당에서 두드러지게 커서 조금만 움직여도 그녀를 건드리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시했다.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 강렬했다. 그자의 맞은편에는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눈높이로 집어 들고 소리쳤다.

 

“후이야! 내가 고기를 통해서 보니 식당 관리인이 저기로 도망가고 있다!”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건드림의 대상자가 바로 그녀였다. 접시를 깨끗이 비운 후에 그자는 그녀가 떨어뜨린 모자를 주워 팔 사이에 끼웠다. 그녀는 멍하니 따라가다가 돌아왔다. 잠시 후에 주범과 공범이 출현했다. 그녀는 자기의 가슴 속에 섬광이 내리치는 것을 느꼈다.

 

후이 – 그 섬광의 이름 – 는 산골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다음 대학교에 들어왔고, 법대 졸업반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비 오듯 쏟았다. 눈을 뜰 때까지 키스했고, 그의 청순한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무 늦었어!”

 

후이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의 튀어나온 이가 그녀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서로가 필요할 때는 결코 늦었다고 할 수 없지.”

 

후이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후이와 가을비를 맞으며 손잡고 시내를 쏘다닐 때조차 울었다. 배 속의 아이가 불륜의 사랑으로 쏘다니는 엄마에게 피곤하다고 보채고 있었다. 그녀는 배를 감싸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니다. 데가 없다고 하더라도 후이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과분한 일이었다.

 

그녀와 데의 결혼식이 서둘러졌다. 남자 집에서는 며느리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배를 동여맬 정도가 되었으니 결혼시켜야 한다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함으로써 후이를 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전날, 후이가 그녀의 방으로 찾아왔다. 같은 방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실습을 나갔다. 후이는 방에 그녀 혼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이는 인내와 진솔함으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탬! 문 열어라, 한마디만 할게!”

 

그녀는 침대에 누워 침묵하고 있었다.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니야! 그녀는 그처럼 모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록 후이의 한마디만 듣기 위한 것일지라도 문을 열 수는 없었다. 그 ‘한마디’라는 말 자체가 그녀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침대에는 데가 같이 있었다. 데는 발을 꼬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후이의 부르는 소리도 그에게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청년이 그녀를 좋아했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후이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었고, 중요한 것은 누가 그녀와 결혼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데의 집 역시 그리 부자도 아니었다. 수도에 산다고는 하지만 그의 집은 언제 지었는지도 모르는 아파트의 4층이었다. 며느리를 들이기 위하여 시부모는 아파트 베란다에 마치 성냥갑 같은 두 평 반짜리 방을 새로 만들었다. 겨울에는 바람이 뼈까지 파고들었고, 여름에는 온실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곳에서 그녀를 쏙 빼닮은 예쁜 공주를 낳았다. 데의 부모는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데가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대를 이를 지팡이가 있어야 더 안심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시부모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아이는 태어났고, 보통 할아버지 할머니의 바람처럼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가 두 달째 되었을 때 데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따로따로 먹자. 우리는 늙어서 성격도 까다로워지고, 말도 많아졌으니 말 듣기 쉽고…….”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 이제 그녀는 지난 일 년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와 데는 얹혀살고 있었다. 데의 부모는 아주 용의주도한 사람으로 한 푼까지도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데의 아버지는 집에서 응웬꾸엔 거리까지 조깅을 했는데, 이는 운동도 하면서 시골에서 올라온 행상들이 파는 고기를 사기 위한 것이었다. 만족한 모습으로 고깃덩어리를 건네주며 맛도 좋고 값도 싸다고 말했었다. 따라서 일 년 이상 그녀 부부를 데리고 있었던 것은 생각보다 긴 것이었다. 단지 어찌 살 것인지를 생각하면 정말 황당했다. 그녀의 생계 걱정을 이해한 듯이 데의 어머니가 말했다.

 

“데가 외국에서 벌어온 돈이 좀 있지만, 어미가 갖고 있겠다. 헤픈 너희들에게 주었다간 일 년도 안 되어 빈털터리가 될 것이니. 어미가 이자를 길러주겠다. 그리고 매달 삼십만 동을 주겠다. 이것은 데의 밥값이고, 이제부터 전기세, 연탄값, 물세는 둘로 나누어 반은 우리가 책임지고 반은 너희들이 책임져라.”

 

따로 먹는다면 더 편할 것이다. 처음에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 식구였지만 실제로는 두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관심을 받는 아이는 오직 젖만 먹었다. 부부는 아무거나 먹어도 되었다. 힘들 때는 채소와 달걀만으로 때웠다. 게다가 이제는 먹고 싶을 때 요리를 했고, 한밤중에 먹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한 달에 데의 월급 삼십만 동으로도 굶지는 않았다.

 

본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부자는 일 좋아하고 실업자는 먹는 것에 관심을 쏟는다. 두 부부는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아침이 되면 노부부는 운동을 겸해서 시장을 본 다음에, 아침 식사 대신에 점심밥을 지었다. 실업자 젊은 부부는 밤중에 아이를 달래느라 아침에는 늦잠을 잤고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일어나서는 배가 고파 밥을 짓기 위해 솥을 찾았다. 그로 인해 최초의 갈등이 터졌다.

 

화장실에 붙어 있는 물탱크 옆에 있는 화로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상대방이 요리할 때 한 사람은 옆에서 당당하게 기다렸다. 처음에는 요리하는 사람도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어려워하며 서둘렀다. 그러나 점점 아무도 양보하지 않았고, 절대로 지는 법이 없으며, 마치 장님이요 귀머거리인 양 무관심했다.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 뜸도 들지 않은 끓고 있는 밥솥을 시어머니가 내려놓고 당신이 요리할 냄비를 올려놓았다. 그녀가 돌아보고는 재빨리 들고 있던 보온병을 바닥에 팽개치고는 자신의 밥솥을 올려놓았다. 시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부인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여보! 심장병 있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기절해요!”

 

데도 뛰어와서 그녀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 주둥아리를 터뜨려버릴 테니!”

 

그녀도 얼굴을 들이대며 대들었다.

 

“쳐라!”

 

주먹 한 방이 그녀의 눈에 튀었다. 그녀는 악을 썼다.

 

“죽여라! 우리 모녀가 행복하게 살게!”

 

데가 펄펄 뛰며 말했다.

 

“너 저기 가서 애나 안고 있어!”

 

이때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했다.

 

‘방아 찔 때는 애 보지 말라’는 말처럼 이제 그녀는 한가했다. 애는 강아지처럼 착했다. 이제는 몸을 뒤집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어 다니고 먹고 자고 울지도 않았다. 탬은 몸도 회복되어 피부는 하얗고, 입술은 붉으며 전처럼 토실토실해졌다. 하루는 시장에 갔다가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앞뒤를 돌아보고는 칭찬을 해댔다.

 

“아! 언니 신세가 좋구먼. 하노이 남편을 얻어서 그런지 선녀처럼 예뻐!”

 

그녀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 친구는 아직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고 있었고 여인숙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덜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일자리를 찾았다. 비록 연구소의 사무원이었지만. 연구소 직원 대부분은 박사였고 낮다고 하더라도 석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학사인 그녀가 맡은 일이 아주 단순한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허리가 굽고, 근시이며, 온종일 책상에 눈을 팔고 의자에 엉덩이를 파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녀는 화려한 장식품, 물 갈아주고 뿌려줄 필요도 없는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게다가 한 달에 이십만 동의 계약직 월급과 팔만 동의 점심값만 내면 되었다.

 

그녀는 그것으로도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동으로써 돈을 벌었다. 새끼 새가 처음 둥지에서 나오듯이 그녀는 지저귀었고, 태양이 밝게 떠올랐다. 매일 아침 그녀는 꽃가게에 들러서 막 피기 시작하는 꽃 몇 송이를 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무실의 꽃병은 웃을 줄 알고 걸을 줄 아는 꽃과 더해져서 사무실을 떠들썩한 새로운 분위기로 만들었다. 몇몇 그리 늙지 않은 이들은 갑자기 옷 입는 것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에도 코코넛 색깔의 시골에서 만든 윗도리를 절대 벗지 않았다.

 

그녀의 실장은 대략 육십 살 정도이고 짧은 다리며 더러움과 경솔함으로 유명했다. 근무시간 동안 그는 누리끼리한 벌집 같은 슬리퍼를 신고, 옷에서는 유효기간이 지난 식초처럼 시큼한 냄새가 났다. 회의할 때마다 그는 문 구석에서 곰팡이가 하얗게 핀 구두를 꺼내서 절도 있게 손으로 곰팡이를 털어 냈고 또 절도 있게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종이, 필기구와 자 외에도 양말 한 켤레가 있었다.

 

그는 양말과 구두를 신고, 마치 수탉이 암탉 앞에서 위세를 부리듯 쿵쾅거리며 걸었다. 복 없는 일은 그가 바지의 지퍼 올리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도 아무도 상사가 명예를 지키도록 용감하게 얘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는 바지 단이 풀려도 단추가 떨어져도 옷핀으로 때웠다. 그런데도 그는 시를 읊었다. 더러움을 변명하기 위한 시를. 그가 진짜 예술인이었다. 그녀 역시 그 시인에게 매우 탄복했다. 그러나 그 냄새는 시를 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 비록 후각일 뿐이었지만. 그러나 그의 시는 특별한 냄새가 없었다. 비바람이 치던 어느 날 그는 흥이 나서 비를 바라보다가 돌 속에서 옥을 찾은 듯이 시를 읊었는데, 대충 다음과 같았다.

 

아 어젯밤, 폭풍우 치던 밤,

 

혼미 속에서 나는 갑자기 너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하얗게 밤을 새웠다.

 

언제 비가 그칠지도 모르고…….

 

어떤 의도로 가득 찬 눈 흘김이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험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 후로 퇴근 시간 후에 공문이 있다든가 비서를 맡으라는 일들이 있었다. 비서는 온종일 상사 곁에 앉아 있어야 했다. 상사가 말했다.

 

“아저씨가 너를 정식직원으로 만든 다음에 은퇴할 것이다. 그 일이야말로 세 권의 시집을 출판하는 일 외에, 내 생애에서 의미 있는 마지막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연구논문은 의미 없는 것이고.”

 

그녀는 상사의 빛나는 늙은 눈빛이 두려웠고, 불그스레한 대머리가 두려웠으며, 시가 아니라 냄새가 두려웠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그녀는 상사가 그녀를 안정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었다. 정식직원이 된다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와 주소지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라야 그녀는 비로소 하노이 시민이 되고,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 마음 아픈 고향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두 번의 결혼은 그녀에게 자신감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결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뱀장어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곧 은퇴할 실장이 계약직 여직원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연구소 내에 파다했다. 단지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와 조카로 부르는 호칭만으로 그녀는 모든 사람을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 얼마나 많은 입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와 한국에 ‘오전에는 아저씨 오후에는 오빠, 밤에는 대충 어찌 부르는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녀는 고의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아저씨가 하는 대로 따랐다. 말썽을 피하려고 카페에 가서 자료를 적기도 했고, 정전을 핑계로 공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아저씨의 부인이 출현했다. 검은 얼굴에 붉은 입술 그리고 짙게 바른 분. 그런데도 주름지고 마른 볼에 패인 도랑을 메울 수는 없었다. 상사의 부인은 남편의 미출판 된 3권의 시집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사랑을 보존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있음을 표시했다. 그 시집에는 ‘시마다 그 창녀의 모습이 들어 있다’라고 했다. 그녀는 적지 않은 연구소 직원들의 ‘예쁘다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라고 하는 비웃음 앞에 씁쓸함을 삼켜야 했다.

 

상사가 은퇴했다. 그녀는 연구소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인생은 그녀에게 ‘자신을 감추면 감출수록 쉽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리석음이 태평함을 누린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찾고 싶어서 그리고 미모를 보태서 결국은 자신을 죽이고 또 인생을 망쳤다. 이는 진리였다.

 

그녀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데는 완전히 바뀌었다. 겨울잠을 자던 곰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월급을 보통 때처럼 부인에게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귀가해서 시장가고 밥 짓고 빨래하고, 애 씻기는 일을 했다. 아이는 온종일 돌아다녀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소리쳤다.

 

“아이고! 지저분해! 누가 이렇게 도깨비처럼 놓아두었니?”

 

시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이년! 너 머릿속에 글 좀 들었다고 얼굴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네 집 내력을 한 번 봐라! 무슨 고결한 혈통이라고, 어디 감히 우리 집을 더럽다고 욕을 해!”

 

욕과 함께 날아온 것은 데의 주먹이었다.

 

“너 일하러 나가면서부터 나를 무시하는데, 내 손맛을 보여주마!”

 

그녀는 꼼짝 못 하고 서서 울었다. 실제로 데가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녀가 학력이 낮다고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직장에서의 일을 남편에게 숨겼기 때문에 데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직장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아닌가?

 

그녀의 가정생활은 물을 머금은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녀와 데는 서로 대화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데는 이불과 술 속에 묻혀 있었다. 시간이 되면 그는 부모와 같이 식사했고, 그녀와 아이는 알아서 하도록 했다. 그것은 상관없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한 침대에서 자는 것으로, 피할 수 없었다. 같이 안 자려면 바닥에서 자야 하는데 그럴 공간도 없었다. 오직 침대 밑에서 자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가끔 한밤중에 데는 본능적인 그 일을 하려고 더듬었다. 한 번은 그녀가 데를 걷어찬 적이 있었다.

 

“나를 뭐로 보니, 사랑하니?”

 

데는 잠결에 코웃음 치면서도 원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이며,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했다.

 

“아이고! 계속 그려라! 우리가 화난 것이지 어디 그놈들이 화난 것이냐?”

 

그녀에게는 울 눈물도 없었고, 날로 커가는 딸 아이 때문에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옛날 같은 반 친구였던 반을 다시 만났다. 어떻게 떠돌아다녔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반 역시 하노이로 와서 시내에서 가장 큰 시장에 있는 전자 상점의 주인이 되었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찌 이렇게 빨리 바뀌었어?”

 

반은 웃으면서 노랗게 빛나는 손바닥을 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에 부처가 여러 명 있다는 것을 몰랐니?”

 

반은 현재 그의 재산은 수십억 동이지만 아직도 멀았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점심을 하자고 했다. 그녀가 주저하자 반이 말을 잘랐다.

 

“너 무슨 말이 그리 많아? 하노이 남편이 질투할까 봐 걱정되니?”

 

그녀는 반을 바라보다가 꿈속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만일 옛날에……. 한참 후에 반이 말했다.

 

“너 회사에 누구 돈 빌려줄 사람 없니? 몇억 동만 대신 빌려주라. 이자는 높이 줄게. 계산도 정확하고, 너에게도 구전을 줄게, 오케이?”

 

그녀는 놀랐다.

 

“너 미쳤니? 내가 이런데 누가 빌려주니?”

 

반이 웃었다.

 

“너는 나만 데려다줘. 내가 이런 사람이고 내 재산이 이렇다고 하면 누가 안 믿겠니? 너는 단지 소개만 하면 돼. 안심해라. 나 확실한 사람이다. 네 체면 구기지 않도록 할게!”

 

그녀는 돈 빌리는 것이 그렇게 쉽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사억 동이라는 돈을 마치 최면술에 걸린 듯이 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저들은 그리 돈이 많은가? 그는 넉넉하게 선이자를 떼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아이에게 주라고 오만 동짜리 몇 장을 그녀에게 찔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너 이러면 나를 무시하는 거다!”

 

석 달이 조용히 흘러갔다. 채무자는 장사가 잘되었고, 채권자는 이자를 받아쓰면서 얼굴이 팝콘처럼 활짝 피었다. 네 번째 달부터 이자가 밀렸고, 반의 얼굴에 주름이 졌다.

 

“물건이 잘 안 팔려!”

 

계가 깨지는 것이 전염병처럼 퍼졌다. 반이 사라졌다. 갑자기 그녀는 수십 명의 연구소 직원들의 채무자가 되었다. 반은 지급을 거절했고 미친 듯이 날뛰며 자포자기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랐고, 악몽을 꾸듯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반을 찾아갔다.

 

“네가 나를 죽였다고!”

 

반은 소름 끼치게 웃었다.

 

“어찌 알 수 있나! 너 아니? 넓은 하늘을 나는 새가 똥을 싸면 누구 머리에 떨어지든 그 사람이 견뎌야 하는 것 아니냐? 그것이 운명이지. 게다가 이것은 전국적인 문제이지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잖아!”

 

반은 턱을 쓸어내렸다.

 

“여기 내 가게다. 그들이 압류해 놓았지. 너 가져갈 것이 있으면 가져가라.”

 

그녀가 순식간에 연구소 전체를 사기 쳤다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헛소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들 주머니에 들어가기 가장 힘든 종류인 돈 문제였다. 어떤 소리도 무시할 수 있었지만 돈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낡은 중국제 미니스커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채권자들이 줄줄이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가 남자에 빠졌다는 얘기가 떠들썩했다. 시부모는 펄펄 뛰며 울었고 데는 무표정이었다. 이웃들이 줄줄이 구경 왔다. 너무 억울했다.

 

어떤 사람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그녀의 머나먼 과거에 대해 시부모에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방울이 모여 물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중이 불륜하여 낳은 자식이라든지, 사생아라든지,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였다. 시부모와 데는 그녀를 내쫒기로 했고, 코를 흘리며 맥없이 울고 있는 딸은 주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애를 두고 조용히 나왔다. 그녀는 시부모가 그녀를 쫓아낼 만큼 분개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데의 가족에게 그녀의 사억 동에 이르는 채무와 연루시킬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 선인들의 그 짧은 한마디를 완전히 이해하고 나니 인생이 고달팠다. 연구소는 그녀를 해임했다. 그 절차는 두 번의 이혼과 마찬가지로 아주 간단했다. 보험도 없고, 노동조합원도 아닌 잡무를 처리하는 계약직 여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복잡한 것이 없었다. 이유는 많았다. 그러나 가장 순탄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는 ‘수습 기간을 통해서 살펴본 결과 능력이 부족하고 업무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를 피하려고 그 이유를 댄 것은 듣기에 가장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가슴 아팠다. 사기꾼이며 채무자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했다면 그녀는 평생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 것이지만 ‘능력이 없다’라고 했으니 완전히 날개를 접어버린 것과 같았다. 이제 어느 회사가 그녀를 뽑을 것인가! 지구는 좁고 한 번만 돌아다니면 다시 만날 수 있는데, 평생 초라한 판결을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맘씨 좋은 사람도 많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씁쓸히 받아들였다. 당사자가 자식이거나 부인이거나 동생이면 누구도 감히 더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사정을 알았기에 감옥에 보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는 판결이 없으란 법이 없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집을 얻으러 나갔다. 이복 언니 집을 찾아가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온 시내가 땅과 집 문제로 들끓고 있었다. 그녀의 가난한 환경에 맞는, 기어들어 가고 기어 나올 수 있는 집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또한 하늘은 결코 죽게 만드는 법이 없었다. 비록 수백 번 뒤집혔지만, 특히 그녀에게 그랬다. 결국 시클로 운전사를 통해서 오두막 촌에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본래 이 지역은 쓰레기 처리장이었는데,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에 마을이 생겼고,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온갖 문제가 많아서 보통 사람들은 지나가다가도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도 않았다. 그녀 자신도 정상이 아닌지, 오래되었다. 집주인은 신문기자로, 노름하듯 아주 싸게 이 땅을 사들였다. 학생 때부터 그녀는 그를 조금 알고 있었고, 그녀의 형편을 알고 집을 빌려주면서 땅을 지키도록 했다. 그녀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그녀의 오두막은 문명 세계와 검은 하천을 경계로 하고 있었다. 하천 건너편은 휘황찬란한 전깃불과 고층 집이었다. 이쪽 세계는 어두컴컴하여 더듬거리며 다녀야 하고 비틀거리며 부교를 건너 어두운 골목을 기어 다니는 것은 물론 범죄가 들끓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그러나 점점 익숙해져 갔다. 누구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범죄 세계에도 그들만의 법이 있는 것 같았다. 그곳은 누가 누구를 조사하는 것도 없고, 자기 일만 하면 되었기에 오히려 저쪽 더 나은 것 같았다. 이 점은 그녀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주 귀중한 것이었다. 가난하고 흉악한 이웃들은 그녀가 옆에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문명 세계에서 온 그녀는 그들을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고,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좀 고생스럽겠지만 광주리에 담배 좀 사고, 찻잔 들고 밤에, 다리 건너 저쪽에 가면 채소 살 돈은 충분히 벌어요.”

 

이제 밥을 해결할 지렛대가 그녀의 손에 있었다. 밤마다 그녀는 낡은 삿갓을 쓰고 다리 초입에 광주리를 놓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님은 깨끗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창녀들과 마을에 들어가 아편 찌꺼기를 구하려는 중독자들이 경찰이 오는지 망보려는 자들이었다. 그녀는 그들로부터 돈을 벌어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슴이 찔렸다. 다시는 그들을 얕보지 않았다. 이쪽에 사는 옷 잘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그녀를 흘겨보는 사람들과 저쪽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나그네이고, 어느 곳에서 멈추어야 할 줄을 모르고 방황하는, 목적지를 모르는 외롭고 힘든 나그네였다. 과거의 잔영이 따라다니는 미래가 불안한 삶이었다.

 

담배 광주리는 매일 밤 한 시까지 하천가에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밤을 좋아했다. 밤은 모든 것을, 그녀까지도 가려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생활의 경계를 없애 주었다. 밤 - 누구나 잠을 잤고 - 누구나 어질고, 정상이었다.

 

그녀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 예상치 못함이 그녀에게 행복과 불행을 가져다주었고, 삶 속에서 그러한 우연을 다 설명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새벽 두 시경, 그녀는 자기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하여 담배 광주리를 들고 다리를 건너려고 할 때였다. 오토바이 한 대가 마을로부터 달려 나오다가 그녀 가까운 곳에서 넘어졌다. 심하게 넘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넘어진 사람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고, 마을 청년들이 나와서 땅에 누워있던 그를 발로 차보고는 침을 뱉으며 탄식했다.

 

“약을 너무 많이 했군! 그대로 놔둬요. 그냥 가세요. 곧 일어날 겁니다.”

 

그녀는 벌벌 떨며 걸어갔다. 다리를 거의 건널 무렵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오두막에서 깨어난 그는 침대에 편안히 누워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자신이 여기에 누워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가 무얼 갖다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 물을 갖다주었다. 그녀는 재빨리 물었다.

 

“왜 그랬어요?”

 

그는 덩치가 크고 남자다운 얼굴에 옷을 단정히 입은 것이 지식인 티가 났다. 그의 오토바이만 보아도 그가 이곳에 사는 중독자나 도둑질하는 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면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깊은 밤에 그녀는 떨면서 남자의 손을 잡았다. 팔에는 주사 자국이 여러 군데였다. 왜 이럴까? 그녀는 손을 밀어내면서 물었고, 수천 년 전에 죽은 성모의 얼굴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 울음을 머금게 했다. 그 팔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도 그도 울었다.

 

이십오 년 전에 그는 시골에서 하노이로 올라온 학생이었다. 키 크고 잘생기고 총명한 청년은 수많은 여학생의 선망 대상이었지만 너무 가난했다. 졸업 후 직장을 얻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다. 같은 반 친구가 시내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친척 집에 데리고 갔다. 쉽게 꽁은 신발가게 주인의 사위가 되었다. 꼭 돈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그의 운명 같았다. 결혼식 날 많은 사람이 구경을 왔고, 그중에 ‘사기당했다’라고 소리치는 청년도 있었다. 그때 꽁은, 키가 작고 얼굴은 쟁기 같이 생겼으며 이마는 튀어나왔고 눈은 움푹 들어간 못생긴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보석을 챙기다가 신부의 서류를 보게 되었고, 그는 그녀가 자신보다 두 살이 많고 중학교 1학년 중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애틋한 마음도 없었지만, 첫날밤에 그는 자신이 청소부라는 사실에 씁쓸해했다. 그는 직장을 구했고 날로 승진하면서 돈도 쉽게 벌었다. 부인은 날로 포악해지고, 무식하여 본능적으로 살며 시장바닥에서 굴러먹던 성격을 드러내며, 게다가 질투는 거의 병적이었다. 어떤 여자 동료도 감히 집에 찾아오거나 길가에서 그를 보고 웃을 수 없었다. 비록 자식을 두 명이나 낳아주었지만. 꽁이 직장에 나가면 그녀는 분 바르고 눈썹 그리고, 이웃들과 잡담만 하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편 잡으려면 일단 돈을 다 빼앗고, 밤마다 일수 찍으라고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꽁은 마치 꼬리 잘린 짐승 같았다. 회사에 출근하면 재외교포처럼 거드름을 피웠지만, 밤에 집에 돌아오면 부인이 호주머니를 뒤져 돈, 서류, 전화번호를 찾고 옷 냄새를 맡는 것에 순순히 응해야 했다. 그래도 그 일수만 찍게 하지 않는다면 다른 굴욕을 참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서 바람피울 수도 없었다. 너무도 굴욕적이어서 고개 숙이고 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혼할 수도 없었다. 자식이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녀가 자주 위협하기도 했다.

 

“너 나를 버리면 너와 네 두 자식을 죽여 버릴 거야! 네 얼굴에 황산을 뿌려서 천하에 바람둥이와 사기꾼의 얼굴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 거야!”

 

꽁은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다. 마약을 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터뜨렸다.

 

“제가 있잖아요. 다시는 마약을 하지 마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노력은 하겠지만 가능할지…….”

 

그녀는 그를 미칠 듯이 사랑했다. 처음에는 거의 후이만큼 나중에는 후이와 같은 정도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처럼 사랑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후이는 일찍 여물고 품격 있는 남자의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했었다. 그녀가 아플까 봐 키스도 살살 했었다. 후이는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했고, 따랐다. 그러나 꽁은 달랐다. 그녀가 꼼짝하지 못할 만큼 강렬한 키스를 하기도 했고, 자기 일을 못 하게 하면 눈에 불꽃이 튈 정도로 따귀를 때리기도 했으며, 즉각 가득 찬 사랑으로 안아주기도 했다. 그녀는 진정한 남자의 품속에서 혼미함을 느꼈다. 그녀는 꽁이 그녀가 가진 조건 없는 순종과 헌신적인 행동 그리고 부드러움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꽁은 마약을 끊기로 약속하였고, 그녀에게서 딸이든 아들이든 간에 아이를 갖기를 원했다. 그 아이는 엄마를 닮아서 예쁘고 아버지를 닮아서 총명할 것이며, 그는 두 모녀를 평생 책임질 능력이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때 그는 그녀의 이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 남자에게 한이 있다고 말했었지?”

 

그녀가 상기시켰다.

 

“이 세상에 많은 남자가 저를 몹시 아프게 했지만, 저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당신이 있잖아요.”

 

꽁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 일생도 여자 때문에 아주 고통스러웠지. 여자가 무서워. 당신이 나를 배신한다면 다시는 결코 여자와 가까워질 수 없을 거야.”

 

꽁과 그녀는 사랑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천속의 바늘도 시간 지나면 드러난다.’라고 말했었다. 마녀의 눈을 피해서 돈을 감추고, 불규칙적으로 드나들던 행위도 결국 모든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특히 마녀의 눈을.

 

그녀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놀랍고 행복한 소식을 전했다. 꽁은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밤 행복이 그 오두막에 가득 찼다. 결국 꽁이 사정했다.

 

“오늘만 피우자. 내일부터는 휴가 내고 치료받으러 갈게. 아무도 모를 거야. 태어날 아이 아버지가 마약 중독자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 당신과 아이가 행복하도록 내가 무슨 일이든 할게.”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빨리 걸으면 배 속의 아이가 아플 것 같아 조심스럽게 걸어서 이웃으로 마약을 구하러 갔다.

 

그녀가 꽁을 도와서 그것과 이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가 마약을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려 있었다. 험상궂은 부인의 표정은 그 부인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는 것을 감히 막지 못 하게 했다. 부인은 따귀 두 대를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화냥년!”

 

그리고는 꽁을 향해 말했다.

 

“정신 나간 놈아! 내 치마 잡을 때는 언제고, 나도 네놈을 쫓아내고 말겠어! 아, 창녀하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같이 마약을 해! 네놈 직장에도 소문이 파다하더라!”

 

말을 마치고 휙 돌아서 가버렸다.

 

경찰서에서 그녀는 눈물만 줄줄 흘리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꽁은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놀랐고, 꽁을 안 지가 오래된 것 같았다. 어린 새가 폭풍을 만나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조사관의 목소리가 그녀의 고개를 들게 했다. 후이의 친구인 럼이 그녀 앞에 분명히 앉아 있었다. 바로 옛날 학생 식당에서 만난 후이의 친구였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럼, 럼, 도와줘요…….”

 

조사관의 목소리는 엄숙했다.

 

“분명하고 솔직하게 진술해주기를 바랍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관용을 베풀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심문 둘째 날, 주의 깊게 듣던 간부가 화가 난 듯이 목소리를 높여서, 주제와는 상관없는 질문을 했다.

 

“어떻게 그가 중독자라는 것을 알았으며, 부인도 있는데 사랑했단 말인가?”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누가 그들에게 꽁이 중독자이며, 결혼한 그를 사랑했다고 말해주었는가? 그녀는 너무 고독했고 사랑에 목말랐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이라는 한 마디 때문에 그녀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누구도 꽁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조사관이 그녀와 꽁을 마약 사용죄로 결론을 내자 그녀는 멍해졌다. 그녀는 깨끗했다. 그녀는 결코 중독자가 아니며 단지 꽁이 그녀의 집에서 마약을 하도록 사다 주었을 뿐이었다. 조사관이 책상을 치면서 소리쳤다. 만일 계속 고집부린다면 결코 꽁을 만날 수 없다고. 그녀는 눈물을 비 오듯 쏟았다. 아, 깨끗하면 무어냐, 죄를 벗어나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죄가 있어도 꽁을 만날 수 있고, 꽁과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며 꽁의 아이를 키울 수만 있다면,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서에 서명했다. 갑자기 복통이 와서 그녀는 새파랗게 질렸다.

 

임시 구류기간이 끝나고, 조사관이 다시 그녀를 만나러 왔다. 그는 그녀가 초범이고, 임신 중이며 건강이 좋지 않으므로 풀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별대우로 꽁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녀는 영원히,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꽁을 끌어안았다. 꽁은 야위어 있었다. 그는 부인이 이혼서류에 서명하라고 찾아왔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당신이 없으면 외롭고 무섭다고 중얼거리다 웃었다. 그녀는 복통 때문에 의무실로 가야 했다. 조사관은 그녀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서, 억울하지만 그녀가 그와 같이 마약을 사용했다고 시인하라고 시켰다. 꽁이 그녀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내 마누라, 순진한 내 마누라, 만일 당신이 마약을 하지 않고 단지 내가 사용토록 사다 주었다고 하면 그 죄가 내 죄보다 네 배는 무겁다는 것을 알아?”

 

그녀는 구치소를 나왔지만,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그 꿈이 기쁜지 슬픈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수년의 고생을 뒤로 하고 산골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꽁이 준 남은 돈으로 언덕배기에 작은 나뭇집을 짓고 주위에 나무 심고, 닭 기르고 채소 심으며 지내다 보면 모든 것이 잊힐 것이고, 그때 그녀는 문맹자를 위한 선생을 할 것이었다. 고향은 어쨌든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곳이야말로 산골 출신인 그녀의 진정한 생활 터전이었다. 그녀는 꽁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빠와 같이 총명하고 엄마같이 예쁘고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그녀는 두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엄마 노릇을 못 했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녀의 자신의 것이 아닌, 도시의 전등과 번화함도 저 멀리 가버렸다. 처음부터 그녀는 인생이라는 얼굴을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과거의 욕망, 꿈, 단념, 회피가 그녀를 실패하게 했다.

 

갑자기 그녀에게 떠올랐다. 인생길에서 그 어느날 조사받을 때의 화난 얼굴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번역: 배양수/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작가 도티투히엔(Đỗ Thị Thu Hiên)은?

 

1969년 하노이 서북쪽에 있는 푸터에서 태어났고, 응웬주 문인대학 4기생으로 졸업했다. 국가정치출판사의 편집부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베트남공산당 홈페이지 문예 담당 부편집장이다.

 

이 작품은 베트남 문인회에서 발간하는 주간 <문예지>에서 뽑은 2002년 우수 단편작이다. 중사로 제대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업무가 많아서 글을 잘 못 쓰고 있다고 하며, 은퇴 후에 많이 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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