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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준영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 100년, ‘성공’한 진출은 무엇일까?”

동남아시아연구,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대안적 국외 이주 역사 기술 제언’

 

동남아시아연구 31권,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대안적 국외 이주 역사 기술 제언’

 

2020년은 적도의 땅, 인도네시아에 한인이 진출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이에 맞춰 100년의 인도네시아 한인과 한인 기업 진출사를 기록한 책이 출간되었다.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서울: 순정아이북스, 2020)는 인도네시아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들로 구성된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가 직접 기록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박준영이 동남아시아연구 31권 1호에 이에 대한 서평(‘인도네시아 한인 ‘성공’ 진출사:대안적 국외 이주 역사 기술 제언’)을 실었다.

 

필자 박준영은 이 책이 갖는 의미를 특별히 강조하고픈 내용에 대해 확대하여 들여다보며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100년 이후의 한인 역사 기술에 대한 필자의 의견를 밝혔다. 아세안익스프레스에서 박준영 서평을 소개한다.

 

■ 당사자로부터 기록된 100년 역사 편찬’의 과업 ‘열의’와 ‘고민’ 느껴져

 

현재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이 책의 집필진이 되어 책의 곳곳에서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 100년의 역사 ‘속에’ 당사자로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500여 쪽에 달하는 한인이주 역사는 총 일곱 개의 챕터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100년이 되던 해(2020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방대한 분량의 책을 출간한 것으로 보아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100년 역사를 직접 기록하겠다는 열의가 대단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 이주 경험이 있는 필자에게도 집필 소식이 알려진 때부터 출간을 기다려온 책이기도 하다. 편찬위원회 및 증언자들의 헌신적인 고민과 치열한 토론을 통해 ‘당사자로부터 기록된 100년 역사 편찬’의 과업을 달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한인과 한인 기업의 성공 진출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사에서는 한인 기업 진출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에서는 챕터 3과 4를 중심으로 기록되어있으며 다른 주제를 다룬 챕터에서도 한인 기업은 한인 삶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챕터 3, 4에서는 한인 기업 진출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하는데, 1960-1970년대는 첫 번째 단계로서, 인도네시아 천연 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한인 기업 진출 역사가 주를 이루는 초창기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도네시아 2대 대통령인 수하르토(Haji Mohammad Soeharto) 대통령이 쿠데타 집권 이후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인데, 당시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던 한국의 산업 영역 확장과 맞물리며 한인 기업의 진출이 이뤄졌다.

 

이 시기 이전 양국 관계는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Sukarno) 대통령이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로 잘 알려진 비동맹주의(Non-Aligned Movement) 주창으로 북한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남한(한국)과는 다소 불편한 외교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이후 한국 정부와 한인 기업은 이를 극복 개선해나가며 한인 기업진출의 초석을 다졌다.

 

다음 단계는 1980-90년대로, 노동집약 산업 주도 한인 기업 진출시기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정치․경제적 혼란을 겪으며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한인 기업들은 인도네시아의 비교적 낮은 노동 임금의 유리한 조건을 잘 활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한인 진출 기업들의영역이 석유화학, 조립 금속, 철강, 자동차, 전자, 플랜트 건설 등 기술 집약 산업으로 확장되었다. 한인 기업진출의 마지막 단계는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포함한다.

 

이 단계에서는 진출 분야의 다각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2단계 시기에 진출한 한인 기업들에 더해 유통,금융, 한류를 활용한 문화 산업 등으로 한인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분야가 확장되었다. 특히 현재는 인도네시아가 계획하고 있는 수도이전에 대한 기술 이전 및 투자, 친환경 자동차 제조 등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새로운 한인 기업 진출 단계를 맞이하며 준비하고 있다.

 

■ 한인 기업인들의 끈기와 도전정신

 

책에서 소개된 한인 기업 진출사에는 수없는 위기와 극복의 역사가 반복된다. 한인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국외 진출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북한과의 외교 경쟁, 이후에는 일본과의 기술 경쟁, 현재는 중국과 자본 경쟁 등 다른 국가와의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한인 기업 진출사가 한인 이주사를 주도한 데에는 책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되듯 한인 기업인들의 끈기와 도전정신이 주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임금 체불 등 노동 이슈와 관련하여 인도네시아에서 한인 기업이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도 있었다.

 

이는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국내에서 기업이 받는 이중적인 평가가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 진출사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대목이다.

 

사실 필자는 이 책에서 한인 기업의 진출사보다 한인 기업 진출사 ‘틈’에 위치한 개인, 혹은 단체의 이주사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이들의 삶의 기록으로부터 국제 이주에서 이주자들을 단순히 정착국에서 얼마만큼 동화되었는지 분석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원국에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정착국에서의 적응을 동시에 도모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초국가주의와 지역적 맥락에서 특수성을 갖고 벌어지는 문제를 보편적 문제로 확장시켜 이해하고 실천하는 세계시민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양칠성-장근원-제대식...초국가주의와 세계시민주의를 실현한 주체들 ‘시선집중’

 

이 책에서는 초국가주의와 세계시민주의를 실현한 주체들을 따로 장을 구성하여 기록하고 있진 않지만, 이들은 이 책의 큰 흐름을 주도하는 통시적인 역사기술 속에서 불쑥 도드라진다.

 

먼저 필자가 주목한 초국가주의․세계시민주의적 주체는 챕터1에 소개된 양칠성이다. 일본은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며 태평양 전쟁을 펼치던 시기 인도네시아를 점령한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양칠성은 자바섬 수라바야의 포로수용소에 배치받아 포로감시원으로 일한다.

 

갑작스런 일본의 패망 이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다시 진출하였고, 인도네시아에 남겨진 양칠성은 인도네시아 독립군 편에서 네덜란드를 대항해 싸운다. 양칠성은 당시 격변하는 세계 정세의 파도에 온몸이 그대로 휩쓸린 것과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양칠성의 일본 포로수용소 근무 경력과 인도네시아 독립군 경력 중 어느 것을 비중 있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양칠성의 삶은 20세기 초중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들어낸 야만적이며 모순적인 시대 배경을 그대로 상징한다.

 

다음으로 소개할 대상은 챕터6에 소개된 유학생 장근원과 제대식이다. 이들은 1977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우호 증진을 위한 국비장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유학 왔다.

 

당시 한국은 문교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해외 유학을 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제한적으로 국외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당국의 이슬람 학생 격려를 위한 초청 장학생 제도와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한 외교적 결정에 의해 특별히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드물지만 당시에는 전무하다 싶었던 한인 무슬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종교와 관련된 학위를 획득한 이후 장근원은 기술자 및 사업가로, 제대식은 교육자로 길을 걸었다. 이 책에서는 이들을 이후 증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한인 유학생의 시초로서 조명하지만, 초국가주의적 시각으로 이들의 이주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다.

 

초국가주의는 기존에 국외 이주민들이 정착국에서 ‘얼마만큼 동화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분석되던 기존의 국제 이주 분석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주민과 이주 현상을 다채롭게 분석하기 위한 대안적 분석틀로 제안되었지만, 이들의 사례를 통해 대안적 국제 이주 현상에 대한 개념인 초국가주의 역시 이들의 이주를 분석하는데 여전히 한계를 드러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삶에서는 민족(한인) 정체성만큼이나 종교 정체성이 큰 부분을 담당한다. 한인이자 무슬림이었던 이들에게 기원국과 정착국에서 경험한 친밀감과 이질감은 초국가주의가 제공하는 국제 이주 분석틀보다 더 복잡하게 교차되며 더욱 정성스러운 분석틀을 요구함과 동시에 국제 이주 현상에 대한 고정된 분석틀 만들기의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이들의 이주 역사를 둘러싸고 초국가주의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가지며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한 초국가주의․세계시민주의적 이주자(집단)은챕터 7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자발적 결성․활동 한인 단체들이다. 챕터 7에서는 다양한 한인 단체들이 소개되지만 이 중 특별히 소개해야 할 단체는 ‘한인니문화연구원’과 ‘416자카르타촛불행동’ 이다.

 

두 단체가 여러 한인 단체들 중 눈에 띈 이유는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각 단체의 설립 목적에 따라 일정한 규모를 의미 있는 시간 동안 유지했다는 점 때문이다.

 

한인니문화연구원은 인도네시아 예술과 역사를 연구하는 다양한 소모임을 조직해내고 한인 및 인도네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며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의 문화 교류를 시도하고 실현시키고 있다. 416자카르타촛불행동은 진보적 한인 시민단체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에 재외 한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보수적인 한인 사회를 다채롭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두 단체는 국가, 지역의 특수한 사회․문화․정치적 요소들을 보편적 개념으로 확장하여 초국가적 교류를 도모하고 실현해내었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한인이주 역사에서 세계시민성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단락을 발견하게 한 단체들이라 평가할 수 있다.

 

■ 한인 여성들의 드러나지 않은 헌신, ‘생활 밀착형’ 한인 이주사 실감나게 기술

 

이상과 같이 이 책에는 기업과 자본의 역사에 더해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대목이 존재한다. 초국가주의와 세계시민주의를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는 다채로운 한인 이주사의 기록에 대한 편찬위원회의 의도가 어떠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이 내용을 통해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사에서 단순히 ‘흥미로운 여러 사람과 단체들’을 소개하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6장과 7장에 이러한 내용이 집중되어있는데, 이 부분에 담긴 ‘생활 밀착형’ 한인 이주사를 실감나게 기술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성 편찬 위원들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한인 기업의 역사는 남성 위주의 역사이지만, 이 역사를 떠받치는 한인 전반의 삶을 위한 한인 여성들의 드러나지 않은(기록되지 않은) 노력과 헌신이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100년의 한인 이주사에서 다채로운 ‘사람’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짧은 단락과 맥락 속에 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챕터 4의 마지막 부분에 짤막하게 소개된 한인 여성 기업인에 대한 단편적인 기술은 아쉽다.

 

남성 위주의 한인 (기업) 이주사에서 네 번째 단계를 맞이하는 한인 기업 진출사의 한 측면은 여성들의 새로운 리더십으로부터 주도되었을 텐데,필자에게는 궁금증과 아쉬움만 남긴 채 한인 기업 챕터가 마무리되었다.

 

■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분화 혹은 다양성

 

책의 전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최근의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분화 혹은 다양성이다. 한인 기업 분야의 변화와 다양한 한인 단체의 출현 및 활동으로부터 이러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한 한인 기업 진출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인 기업의 산업 분야는 진출 단계를 거듭할수록 그 특성을 ‘노동집약적’ 혹은 ‘기술집약적’ 등의 구분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또한 한인 단체의 경우 짧은 단락들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설명하지 못한 다채로운 각 단체별 특성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최근의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의 모습은 ‘100년 이후’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사는 민족(한인)을 범위로 한 일직선적(단선적)인 역사 기술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임을 암시한다.

 

재외 한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내는 역사는 언어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그랬어야 하는’ 필연적 역사가 아닌 매순간 차이의 관계체계가 만들어낸 우연하고 자의적인 접합들의 반복이다. 필자는 부제에 담긴 ‘성공 진출사’라는 표현에 집중했고 ‘무엇을 ‘성공’이라 다루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에서는 100년 동안 한인과 한인 기업이 인도네시아에서 이룬 다양한 ‘성공’에 대해 다룬다. 한 집단의 역사를 서술하며 ‘성공’한 역사를 선별하는 작업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기술하는데 집필진의 고민과 토론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한인과 한인 기업의 다양한 ‘성공들’을 소개하며 집필진의 ‘성공’에 대한 다채로운 의미 규정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엿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성공들’도 이 책이 대변하고자 했던 한인 역사와 일상을 대신 나타낼 수 없으며 한인 사회가 다양해질수록 ‘성공 진출사’가 대변하는 한인 역사의 폭은 좁아질 것이다.

 

 

또한 이 역사서가 단선적 역사서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루는 개인과 단체의 범위를 확장할수록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불안감은 커진다. 이처럼 통시적 역사서가 갖는 한계는 앞서 언급한 한인 여성과 여성 기업인들의 단편적인 기술에 대한 아쉬움과 통시성의 단선적 역사에서자칫 탈선할 수 있었던 세계시민성을 실천하는 한인 단체들을 조명했을 때 느끼는 반가움과 안도감으로부터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문제점으로부터 대안적 역사 기술을 제안하기 위해 이 책의 출발점인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 장윤원과 탈식민주의적 이주 역사 기술

 

이 책이 2020년을 한인 이주의 100년으로 규정하기 위해 기준점으로 잡은 시점은 장윤원이 이주한 1920년이다. 이 책의 여러 대목에서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사에서 장윤원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챕터1의 첫 부분에서 비교적 상세히 서술된다. 당시 조선에서 기업인이던 장윤원은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다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도피하다 인도네시아까지 온다. 장윤원은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1942년 인도네시아에서 일본 헌병에 잡혀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1947년 사망한다.

 

장윤원에 이어 인도네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포로감시원 등 일본군의 군속으로 이주했다 해외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한 이억관을 비롯한 고려독립청년당, 인도네시아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식민주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이주자들로 이어진다. 또한 앞서 언급한 양칠성의 경우 인도네시아 식민주의 역사와도 관련된 초기 한인 이주 역사이다.

 

집필진은 현재의 인도네시아한인 역사는 100년 전의 역사로부터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대표적으로 프롤로그에서 ‘한인 100년사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라는 문구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와 연결된 초기 한인 이주 역사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식민주의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으로부터 이어지는 한인 이주 역사 서술에서 탈식민주의적 기술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다.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소쉬르가 주장한 공시적 역사 서술에서 나아가 ‘동시대적’ 탈식민주의 역사 기술을 주장한다(호미 바바 2012).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탈식민주의 역사 기술은 식민주의를 가능케 했던 이항대립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가능케 한 이분법적 대립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담론이라 하여 그의 주장에서 민족주의는 식민주의만큼이나 철저하게 배격된다.

 

이와 같은 호미 바바의 시각에 따르면 한인 100년사는 한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에 의해 단선적으로 기록된 역사다. 이 역사는 ‘상상된 공동체’인 민족(국민)을 단일체로 나타내는 문제적 정치 문화 언어들이라 비판할 수 있다.

 

호미 바바가 제안하는 탈식민주의 역사 기술은 국가의 집단성과 응집성의 언어 위기를 인식(‘국민’ 담론이 갖고 있는 이중성과 양가성을 발견)하고 ‘성공’의 단선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있는 소수자들을 동시대적으로 조명하는 역사 기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들이란 국가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잊혀졌던 존재들이다.

 

이러한 대안적 역사 기술에서 그가 주목한 소수자의 역할은 지배담론의 목적을 억제함으로써 국가, 국민, 민족의 생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연속론적이고 누적적인 교의적 시간성과 법과 질서의 이율배반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운동하는 개인들의 한계적인 통합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다(호미 바바 2012).

 

동시대성이란 현재 속에 과거의 계기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형식을 의미하며 동시대적 접근에는 다양한 이접성(이질적인 것들의 접합)이 존재한다. 통시적 역사의 흐름에서는 선별이 불가피하며 성공한 100년의 역사 기술에서 이러한 선별의 과정에서 다수의 존재(특히 소수자들)는 탈락한다.

 

 

이 탈락은 100년의 역사 서술을 통한 한인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탈락이다. 한인과 한인 기업의 수많은 성공들로부터 과거에 탈락되었던(잊혀졌던) 한인 식민주의 피해자(희생자, 생존자)들을 다시 기억하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또다시 100년, 혹은 100년만큼 의미 있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현재 탈락된 존재들을 엄청난 노력으로 재조명하지 않기 위해 선별과 탈락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적 기억, 기술이 호미 바바가 탈식민주의적 역사 기술로 제안한 동시대적 역사 기술이라고 생각하며 대안적 이주 역사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 탈락한 소수자들의 ‘동시대적 역사’로부터 반가움과 안도감 느낄 수 있길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는 특정한 범위의 지역(인도네시아)에 서 한 집단(한인)이 긴 시간(100년) 어떻게 존재해왔는지를 기록한 의미 있는 책이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인과 한인 기업의 역사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한인들의 초국가주의․세계시민주의적 실천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역사의 당사자이기도 한 집필진의 이 책을 만들기 위한 자료 수집과 관찰, 인터뷰 등에 들인 노력과 수고에 대한 경의는 다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아가 이러한 소중한 기록으로부터 앞으로의 한인이주 기록은 뒤와 앞을 바라보는 통시적 기술이 아닌 옆을 바라보는 공시적, 동시대적 기술이 필요성을 개진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한인 100년사’의 의의와 한계로부터 제안된 탈식민주의(동시대적)이주 역사 기술을 통해 통시적 역사에서 빈번히 탈락되는 소수자들의 여릿한 서사(미셸 푸코 2012)4)가 발견되고 기록되길, 이로부터 반가움과 안도감을 경험하길 바란다.

 

글쓴이=박준영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disciple0411@snu.ac.kr

 

**전체 파일을 원하는 이는 한국동남아학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박준영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국외 이주 현상, 한인 여성 이주, 동남아시아 지역학 등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인도네시아의 탈식민주의 공간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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