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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기 칼럼] ‘베트남 영웅’ 박항서의 ‘호우시절’

축구와 리더십으로 ‘쌀딩크’...은퇴 이후에도 ‘한국-베트남’ 가교 ‘동행

 

 

“베트남 축구대표팀과의 지난 5년간은 내 인생의 최고 행복한 시기였다.”

 

박항서(64) 감독은 베트남 국영 VTV1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로 ‘베트남 영웅’이다.

 

2017년 9월 부임한 그는 우선 축구 성적표로 ‘박항서 매직’을 연출했다. 그는 전무후무한 최고성적으로 베트남을 동남아 최강자로 발돋움시켰다.

 

10년만에 AFF 우승(2018), 아시안게임 첫 4강(2018), 60년만의 SEA게임 금메달(2019), 역대 첫 월드컵(2022 카타르)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진출과 첫승 등으로 환호를 받았다. 그 덕분에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 FIFA 랭킹 100위권에 가장 긴 기간을 유지한 국가로 남아 있다.

 

그의 선풍적인 인기는 한국 ‘2022 월드컵 4강신화’를 쓴 히딩크 감독과 많이 비교되었다. 그는 히딩크 아래 수석코치를 지냈다. 그래서 별명이 ‘쌀딩크(베트남의 주산물인 쌀과 히딩크 감독 합성어)로 추앙받았다.

 

 

‘파파리더십’으로도 감동을 선사했다. ‘파파박’이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잘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선수들을 보듬았다. 선수발을 직접 씻어주거나 허리부상을 당한 선수를 위해 인삼을 선물하고 항공기 1등석을 양보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다.

 

그는 무엇보다 축구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의 거리를 한층 좁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외세의 침략과 분단 등 역사상 경험의 유사성, 근면과 부지런함과 유교사상이 닮은 나라다.

 

그는 기적 같은 성적표와 감동리더십으로 베트남에서 사랑받았다. 한국에서도 베트남 이미지를 ‘월남’에서 벗어나 아세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변화시켰다. 한 사람의 민간대사가 누구도 못해낸 문화 외교의 금자탑을 쌓은 그는 외국인 감독 최초 베트남 2급 노동훈장을 받았다.

 

두보의 시 중의 한 구절으로 유명한 ‘호우시절(好雨時節)’이 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비를 내린다”는 뜻이다. 그도 “5년간 내 인생의 최고 행복한 시기”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감독을 맡은 2018년은 베트남이 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 6~7%를 기록하는 시기였다. 국민소득 지수인 1인당 GDP도 4000달러를 향해 달렸다. 이 같은 경이로운 고속성장은 노동과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가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박항서 매직’은 축구 성적보다도 고속성장으로 인한 노동문제, 도시와 농촌, 빈부갈등 등 부작용과 문제가 터져올 시기에 ‘승리’의 감격으로 베트남 국민을 하나로 묶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고별전이자 AFF 결승에서 베트남은 1차 홈경기에서 태국과 2-2로 비겼다. 이후 태국 원정 경기서 0-1로 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우승의 ‘라스트 댄스와 ‘유종지미’에는 실패해 아쉬웠지만 그는 여전히 ‘국민영웅’이었다.

 

태국 최종전에는 3000여명의 베트남 팬들이 현지까지 찾아와 응원전을 펼쳤다. 한 팬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5년의 여정’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경기장을 찾았다. 이 감사는 진심이 담겼다.

 

 

그렇다. 박항서가 가는 길은 베트남의 새 역사였다.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에 베트남 축구의 무서움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동남아 정상을 이끌었다. ‘축구’가 국기(國技)임에도 자력으로 인도차이나 밖으로 나가지 못한 베트남 국민들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시켰다.

 

베트남 사령탑 자리는 2년이 넘도록 버티지 못한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그는 그 징크스를 깼다. ‘박항서 매직’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선수들에게는 ‘경기 패배 후 고개를 숙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일갈해 승리 DNA를 불어넣었다.

 

문득 지난 7월 베트남 여행 중 만났던 현지 젊은이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손흥민을 좋아해 늘 위성 생중계를 본다. 물론 ‘박항서’ 감독은 더욱 좋아한다. 존경한다”고 말했다.

 

최근 베트남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항공(Vietnam Airlines)은 그에게 한국-베트남 노선 비즈니스 좌석 평생 이용권을 선물했다. “축구대표팀을 이끌면서 보여준 헌신, 영광, 승리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고, 행복했던 5년”이라고 말하던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 그는 재계약 기자회견에서 “감독직을 내려놓더라도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취임 당시 말을 잊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5년 4개월 임기 10여일을 남긴 설날을 베트남에서 보낸다. 그의 임기는 1월 31일이다. 굿바이 ‘쌀딩크’ ‘파파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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