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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주여, 어디로...“쿠오바디스,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영향, “캄보디아 전역이 마치 범죄 도시” ‘과잉 경계’ 씁쓸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요한복음 16:5)

 

최근 ‘쿠오바디스, 대한민국’이라는 칼럼을 읽었다.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불확실한 국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논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에도, 그리고 지금의 캄보디아에도 해당된다.

 

‘쿠오바디스, 캄보디아’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다. 11월 13일 프놈펜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협력 포럼 참석을 위해 김해공항에서 탑승권을 받는데, 항공사 직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얼마 전에도 한 여성이 프놈펜에 간다고 해서 왜 가시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그곳에서 사업을 한다더라”며, '그런 게 아니면 가지않는 게 좋다'는 뉘앙스다. 캄보디아가 높은 여행경보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일게다.

 

인천공항 환승구역에서도 무장 경찰이 목적지를 재차 확인했다. 과잉의 시대라지만, 이런 ‘과잉 경계’는 씁쓸했다. 캄보디아 전역이 마치 범죄 도시라도 된 듯한 인상이다. 나 역시 여러 차례 공무로 캄보디아를 방문했지만, 이번처럼 경계심이 높았던 적은 없었다. 최근 우리 국민이 온라인 사기에 연루되어 집단 송환되는 사건이 잇따르자, 그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말 말레이시아 한‧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훈 마네 캄보디아 총리와 만나 캄보디아 경찰서 내 ‘코리아 데스크’ 설치를 합의했다. 내가 프놈펜으로 향하던 날엔 외교부 장관과 경찰청장 대리가 현지를 방문해 총리를 다시 만났다. 공항 대형 스크린에서 그 장면이 반복되자, 긴장된 분위기가 더욱 실감났다.

 

한때 필리핀에서도 우리 국민이 범죄 표적이 되자 경찰서 내에 코리아 데스크를 설치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치안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도 이런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외국 경찰이 자비행기 안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캄보디아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훈센 전 총리의 거의 40여 년 장기집권과 아들 훈 마넷 총리로의 승계로, 캄보디아 정치엔 깊은 고인 물이 생겼다. 야당은 사실상 사라졌고, 여당조차 훈센 가문과 운명 공동체처럼 얽혀 있다. 북한의 권력 구조와 닮은꼴이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정치 과잉, 가문 독점’의 현실이 지금의 혼탁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원래 강한 나라였다. 한때 대륙 동남아를 호령하던 앙코르 제국의 후예이자, 1970년대 중반 원시공산주의 광풍 속에 인구 25%가 학살당한 크메르 비극의 피해국이다. 인구는 아직도 1,800만 명 수준에 머물러,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다. 오랜 고통을 겪은 국민들은 훈센 시대를 ‘태평성대’로 여긴다는 말도 있다. 과거의 비극과 비교하면 ‘살 만하다’는 의미겠지만, 진정한 태평성대는 아닐 것이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 분쟁이 재연되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중재에 나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경 카지노와 온라인 범죄 단속으로 기득권의 자금줄이 막히자, 이를 돌리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엔 탁신 가문과 훈센 가문의 유대가 완충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 방파제가 사라졌다. 아세안의 ‘화약고’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캄보디아는 오랫동안 아세안의 ‘스포일러(spoiler)’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1967년 창설 이후 60여 년간 아세안 회원국 간에는 전쟁이 없었다는 ‘장기 평화(long peace)’의 자부심이 있었지만, 2011년과 2025년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은 그 신화를 깨뜨렸다.

 

또한 캄보디아는 2012년 아세안 의장국 시절, 아세안 역사 45년만에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을 옹호하다가 회원국 간 합의문인 아세안 커뮤니케조차 채택하지 못한 뼈아픈 전례를 남겼다.

 

물론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나아지고, 국민의 삶이 개선되면 변화의 가능성은 생긴다. 훈 마넷 총리 정부가 부패의 고리를 끊고, 보다 투명한 국정 운영과 정치적 포용을 실천한다면 캄보디아는 달라질 수 있다.

 

쿠오바디스, 캄보디아.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길의 끝이 과거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전 아세안 대사)

 

 

 

서정인 유엔기념공원관리처장은?

 

외교부 공보과장 및 동남아과장, 남아시아태평양국장, 역임했다. 이후 아세안 대사, 태국 공사참사관에서 최근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까지 20여년 이상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업무를 했다.

 

<한-아세안 외교 30년을 말한다>(2019), <아세안의 시간>(2019) 단행본 공동 편집 및 특별기고를 했으며, 정기 간행물 외교지 기고 및 아시아경제, 부산일보 고정 칼럼을 비롯해 매경, 한국 등 일간지에 동남아 및 아세안 관련 기고를 했다.

 

고려대 아세안 센터 연구위원,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이사, 아세안안보포럼 전문가 그룹(ARF EEPs) 일원이며 현재 방콕 소재 UNESCAP 시니어 컨설턴트이자 카카오스토리에 아세안 편지를 쓰고 있다.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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