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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 철도여행2] 사이공역서 '남북철도' 상행선 협궤열차를 타다

왁자지껄 쉴새없이 웃음 터지는 열차 드디어 판티엣 도착...참파왕조-밤바다 파도소리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부리나케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타고 사이공( Saigon) 역으로 달려갔다.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역사 앞에는 끝없이 드나드는 택시 행렬, 여행객들로 붐볐다. 고색창연한 높이 3층 역사는 옆으로 길었다. 코로나19가 많은 일상을 바꾸었는데, 이제 차표도 전자티켓을 출력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탈 열차는 사이공역에서 하노이(Hanoi)역까지 이어지는 '남북선'이다. 베트남이 남북통일이 되어 사이공 도시명을 호치민이라고 바꾸었지만 기차역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상상 속의 해안철도 아니었다...시속 40km 협궤철도 '호객'하는 판매직원 반갑다!

 

역사와 플랫폼에는 토요일이라 나들이객들이 많아보였다. 막상 기차에 타보니 상상 속의 해안철도는 아니었다. 기차는 해안길 대신 산과 강, 도시로 이어졌다. 철도가 본디 해안길을 따라가는 관광용이 아니라 도시와 산 등 생활과 산업을 잇는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인 듯했다. 

 

내가 탄 열차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의 새마을호, 아니 이보다는 무궁화 또는 비둘기 수준이었다. 베트남 철도는 기존 철로보다 좁은 협궤철도다. 열차는 시속 30~40km로 달렸다. 남북선은 1726km, 역은 49개다. 철로 또한 복선이 아니라 단선이었다.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고 에어컨도 켜져있지만 객실 내부는 낡은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탄 객실은 1호로 그 옆이 식당칸이었다. 식당칸은 등받이가 나무로 되어있고 마주보고 대화가 가능하며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철칵철칵, 열차는 유행가 '네박자' 리듬으로 북쪽으로 달렸다. 초록초록 바나나 나무와 야자수 나무들이 낮은 산등선이와 겹쳐 지나갔다. 마을을 앞두고 종종 긴 기적소리를 냈다. 향수를 불러냈다.

 

열차는 가끔 간이역에서 쉬었다. 객차에는 정복차림의 판매원이 과일 음료 과자 음식 등을 팔았다. 4시간 내내 끊임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오가면서 호객하고 팔았다. 아마 “옥수수 왔어요” 정도 베트남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판매직원들의 호객에 매우 즐거워했다. 간이역에서는 급히 올라타 무지 빠르게 설명하면서 후다닥 과일을 팔고 내려가는 여성도 있었다. 

 

 

만석인 1호 차량에는 2~3세 아이가 끼어 있는 가족과 8명 정도가 함께 탄 떠들썩한 그룹이 내 좌석 인근에 있었다. 그들은 왁자지껄 쉴새없이 명랑한 대화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새삼 베트남이 가족중심 사회고, 명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갖고온 과일과 빵을 나누어 먹었다. 명랑하게 터뜨리는 웃음과 수다의 중심에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할아버지 품에서 엄마 그리고 다른 일행 품에서 품으로 계속 옮겨졌다. 다른 좌석의 아이들도 떠들썩하게 재잘댔다. 

 

 

대학시절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와 강촌으로 MT(멤버십 트레이닝)를 갔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열차가 4시간만에 멈춘 곳은 판티엣(Phan Thiet)으로 빈투언성(Binh Thuân) 성도다. 호치민 200km 동북부에 있는 곳이다. 

 

■ 판티엣역 도착, 리조트에 짐 맡기고 점심, 참파 왕조 유적지

 

에디 캔터는 말했다. "천천히 삶을 즐기라. 너무 빨리 달리면 경치만 놓치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하는 의식까지 놓치게 된다." 오랜만이었다. 정말 천천히 나와 타인의 삶을 관찰했다. 그것도 낯선 땅에서 천천히 달리는 열차에서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판티엣역은 작지만 정갈했다. 역 앞 긴 택시들을 지나니 리조트 구역으로 가는 버스들이 대기중이었다. 버스는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길을 30분 가량 달렸다. 리조트 구역은 도로를 두고 해안가 건물과 뒤편 길가 건물로 나뉘었다. 내가 묵을 길가 ‘로터스빌리지’ 숙소에 짐을 맡기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판티엣 도착 이후 첫 일정은 참파(Champa) 유적지 관광이었다. 판티엣은 남부 베트남의 ‘참파 왕국’의 수도다. 참파는 1200년 전 베트남 중북부를 통치한 왕조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현재의 베트남 영토가 확정된 것은 불과 4세기 전인 17세기경이었다.  

 

참파 유적지는 중북부에 많이 흩어져 있다. 판티엣 외곽인 작은 산 언덕에 참파왕조 유적인 포사누 첨탑이 서있었다. 4~14세기까지 통치한 이 왕조는 인도 힌두교를 숭상했다. 참파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에 있는 한자음이다.

 

힌두교 건축양식을 모방하여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유적지에서는 힌두 복장의 안내인들과 참파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다. 첨탑 뒤에서 실제로 힌두 음악을 연주했다. 

 

 

실제 참파 왕조는 1697년 베트남의 종가(宗家)가 된 응우옌 왕조가 남진정책으로 남하하면서 병합되어 멸망했다. 이 종족은 이제 40만여 소수 종족이 되어 대부분 메콩강과 캄보디아 국경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다.

 

판티엣역에서 내린 이후 처음으로 찾은 유적지서 알게된 베트남 역사였다. 1000년 도읍지 돌아보니 인걸을 어디가고 탑만 덩그라니 남아있구나!

 

■ 파도소리와 바람이 시원한 이글거리는 시푸드 식당

 

판티엣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관광명소다. 베트남에서도 가장 많은 리조트가 모여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도시는 시내와 리조트 구역으로 나뉜다. 그리고 핫플레이스인 '무이네'와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참파 유적지에서 리조트 지역으로 돌아와 ‘해산물(시푸드)’을 먹었다. 돌아보니 관광버스에도 시푸드 가게에서도 한글이 눈에 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자주 온다는 증거인 것 같다.

 

 

찾아간 시푸드 식당 이름은 목랑...목은 오징어, 랑은 햇빛이라고 했다. 오징어를 햇빛에 한 번만 말리는 것이 더 비싸다고 한다.

 

우렁찬 파도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푸드 식당에는 대가족 손님들이 많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주가 한 상에서 먹으면서 명랑하게 대화를 했다. 물론 연인과 부부도 있기는 했지만 대가족 단위 손님이 훨씬 많았다.

 

 

베트남은 올해를 관광의 해로 선포했다. 그 덕분에 국내 관광객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만큼 활기를 찾았다. 바닷가쪽 호텔과 해산물 가게는 주말이라 더욱 붐볐다. 

 

판티엣에 와보니 실제 베트남 국내 관광객이 많았다. 코로나19로 해외 관광객은 무려 90%가 줄었다고 한다. 관광 경기가 회복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았다. 리조트 구역도 그랬다. 바닷가로 바로 통하는 리조트는 불야성인데, 해변가 차도 뒤쪽에는 문을 닫은 곳도 많이 보였다. 

 

 

베트남은 동해에 326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갖고 있다. 어디서나 아름다운 해안선과 모래사장을 볼 수 있어 해수욕객으로 붐빈다. 바다는 관광객을 모이게 하고, 거기서 잡힌 물고기는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시푸드 식당 안에는 마치 교향악처럼 파도소리가 흘러다녔다. 식사 중 눈앞 바다 위에 떠 있던 배들에서 하나둘씩 불꽃이 켜졌다.  배에 불빛이 켜지면 그 불빛에 유혹되어 고기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놀라온 건 베트남 동해안 무이네 앞바다에서 참치가 잡힌다고 것.

 

 

■ 판티엣 택시 기사 “박항서 감독과 박지성-손흥민 좋아한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택시를 탔다. 판티엣 시내로 갔다. 베트남경제연구소장인 김 소장이 '시장조사'를 위해 시내 롯데마트를 둘러보고 싶어했다.

 

 

택시 기사가 먼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축구팬인 그는 “박항서 감독과 손흥민을 좋아한다. 박지성도 안다”고 했다. 축구는 만국 공통어였다. 김 소장도 “우리 아들이 박지성과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거기서 축구를 함께 했다”고 답했다.

 

판티엣 시내 야경은 소박했다. 개발바람이 훑고간 흔적이 없다. 쇼핑몰이나 관공서 외에 높은 건물이 거의 없었다. 축구팬인 기사는 우리를 롯데마트 앞에 내려주었다. 1층 입구를 들어가니 명당자리에, 로고가 친숙한 롯데리아가 자리잡고 있었다.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김 소장은 "베트남에 진출한 롯데마트의 매출 톱3 도시는 다낭-나트랑-붕타우"라고 말했다. 모두 신흥도시이고 한국인들이 자주 오는 관광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 소장은 3층으로 올라가 한국관에 있는 식품이나 미용제품 등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도시는 어둠 속으로 잠겨있었다. 비도 세차게 내렸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아침 일출시간 찾아갈 '하얀모래둔덕'을 상상했다. 베트남에서 사막? 아니 모래둔덕 '듄'을 볼 수 있다니...

 

오늘 베트남에서 처음 타본 남북철도도 즐거웠다. 정겨운 사람 냄새, 한국에서 40년 전에 보았던 철도 여행풍경이 겹쳐졌다. 

 

지난해 11월 베트남 정부는 국토대동맥이 될 남북고속철도를 2028년 착공한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 국책사업이 될 하노이-호치민 남북고속철도는 총연장 1545km, 최고 설계속도 320km/h다. 궤도폭 1435mm인 베트남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궤도폭 1000mm인 기존 철도는 화물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예정대로 남북고속철도가 완공되고 개통될 때는 언제일까. 만약 그날이 오면 지금 남북철도는 추억의 박물관으로 들어가겠지. 한국에서 최고속도 305km/h 고속철도(KTX)가 등장한 이후 존재감이 사라진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비둘기호처럼 말이다. 

 

그래, 이번 여행은 '시간여행'이다. 칙칙폭폭, 협궤철도를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또한 '미래'의 꿈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베트남 남북철도는?

 

남북선은 1899년부터 40년간 건설되어 1936년 하노이-사이공 철도가 개통되었다. 세계 2차대전으로 남북선 전체가 파괴되었다. 이후 베트남이 다시 통일되어 수도 하노이의 하노이역에서 호치민의 사이공역까지 다시 연결했다.

 

총 길이는 1726km로 모두 단선이다, 궤도폭 1000mm, 역은 49개다. 2018년 궤도폭 1435mm인 남북고속철도를 계획되어 2028년 본격 시공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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