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ASEAN)은 동남아 10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성원은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대륙의 5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 등 해양국 5개국이다.
최근 한국과 관련에서 가장 큰 나라가 베트남이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글로벌이 진출하고, 교민도 급속히 늘어나고, 한국 유학생 중 중국에 이어 가장 큰 나라가 베트남이다. 한국관광객이 가장 찾는 동남아 국가도 베트남이다.
이렇게 급속히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아세안익스프레스가 생활 속에서 찾아보는 베트남의 언어, 습속, 그리고 문화 등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부산외대 교수로서, 그리고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인 배양수 교수의 베트남 시공간 여행을 동반할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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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어에는 법적 의미의 ‘표준어’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어에는 ‘표준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어느 지역의 억양도 국가 표준이라고 법적으로 규정한 적이 없다. 이는 단순한 행정상의 누락이 아니라, 베트남이 걸어온 역사적·정치적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외세 지배를 받았고, 전쟁과 분단이 이어지면서 언어 정책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만한 정치적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그 결과, 언어 표준화는 법령이나 제도를 통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과 실제 사용을 통해 형성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특히 베트남어의 북부-중부-남부 방언은 억양과 성조, 모음 체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 문법 구조와 어휘 체계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특정 방언 하나를 강제로 표준으로 지정할 필요성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베트남은 북부–중부–남부로 지역 정체성이 뚜렷한 나라다. 만약 정부가 한 지역의 말을 ‘표준’으로 정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표준어 발음을 따로 익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베트남어에는 표준 발음이나 표준 억양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실제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사실상의 표준’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2. 그렇다면 왜 하노이 말은 ‘표준처럼’ 받아들여질까?
법적으로 표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노이 억양을 베트남어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하노이가 지닌 역사적 상징성과 교육-언론 분야에서의 중심적 역할 때문이다. 하노이는 천 년 수도로서 베트남의 정치-문화 중심지였다. 수도 언어가 자연스럽게 문화적 권위를 갖고 사회적 기준 역할을 맡는 현상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파리 억양이 프랑스어의 대표 억양으로 받아들여지고, 도쿄 억양이 일본 표준어의 기반이 되는 것처럼, 하노이 말은 베트남어의 중심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근대 이후 베트남의 교육 제도와 언론 체계는 대부분 하노이를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교과서의 기본 발음, 국가시험에서 요구되는 언어 기준, 공영 방송에서 사용되는 공식 언어는 모두 북부 방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자연스럽게 하노이 말은 ‘교육과 공식 소통에 가장 적합한 언어’라는 인식이 강화되었고, 이는 하노이 억양이 표준처럼 받아들여지는 배경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베트남어의 라틴 문자 표기 체계인 꾸옥응으(Quốc ngữ, 國語)는 북부 방언 발음을 기준으로 음운 체계를 정립한 측면이 있다. 북부 방언은 여섯 개 성조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표기와 발음의 일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이러한 구조적 적합성은 북부식 발음이 교육용 기준으로 선택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사회적 요인이 결합하면서 하노이 말은 공식적으로, 표준으로 지정되지 않았음에도, 사회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표준 베트남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3. 그러나 하노이 말이 ‘진짜 표준’이 될 수 없는 이유
하노이 억양이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도, 베트남 정부와 언어학자들은 이를 표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노이 국립대 쩐찌조이(Trần Trí Dõi) 교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하노이 말이 표준이라는 인식은 사회적 관념일 뿐이며, 법적-언어학적 의미의 표준은 아니다”라고 명확히 말한다. 그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표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은 발음이나 억양이 아니라 문어체와 정서법(철자 규범) 이다. 베트남어의 공식 표준은 맞춤법, 문장 구조, 단어 선택 등의 문어적 기준이지, 특정 지역의 발음 방식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북부에서는 종성 /n/을 명확히 발음하지만, 남부에서는 /ŋ/에 가까운 소리로 실현되고,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v/가 /j/로 발음되는 변이가 나타난다. 또한 하노이에서도 /s/와 /x/, /ch/와 /tr/, /d/·/r/·/gi/의 변별이 약화하는 음운현상이 흔하지만, 이것들도 모두 지역적 언어 변이로 인정될 뿐 규범적 판단의 대상은 아니다. 이는 단지 하노이식 발음일 뿐이며, 베트남어는 원래 방언의 다양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언어다.
물론 남과 북이 철자가 다른 단어도 있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남과 북의 발음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앞의 n 발음의 예로, 남베트남에 파견되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부 사람들의 발음을 듣고 ‘사이공’에 가깝게 들었기 때문에, 북부식으로 사이곤(Sài Gòn)이라고 발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굳어져서 사이공이라고 사용한다. anh는 북부에서는 ‘아잉’, 남부에서는 ‘안’으로 발음한다. 이러한 남부의 발음 방식의 차이로, 처음 베트남어를 접하는 외국인은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런데도 국영 방송인 VTV에서도 하노이 억양만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남부 억양을 가진 아나운서들도 정기적으로 등장한다. 만약 하노이 억양이 유일한 표준이라면 이런 현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는 다양한 억양이 공식 영역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4. 베트남어 표준화의 실제 쟁점은 ‘발음’이 아니라 ‘철자’이다
베트남어 표준화 논의에서 가장 큰 오해는 ‘표준어=표준 발음’이라는 한국적 시각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 있다. 베트남어에서 표준화의 중심은 발음이 아니라 철자, 맞춤법, 문장 규범이다. 베트남 정부가 실제로 중점적으로 관리해 온 영역은 발음이 아니라 꾸옥응으의 정서법이다.
1984년 교육훈련부는 베트남어 맞춤법 규정을 공포하며 철자와 성조 표기,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방식 등을 국가적으로 통일했다. 이것이 베트남어 표준화의 핵심이며, 이는 오늘날에도 모든 학교·공공기관·출판물에서 공식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5. 그렇다면 학습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베트남 정부가 표준 억양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학습자가 기준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학습 목적과 사용 환경에 따라 가장 적절한 기준을 선택하면 된다. 공적 영역에서 사용되는 베트남어의 주류는 북부 방언이므로, 시험, 뉴스, 공식 문서 등에서 요구되는 언어 규범은 북부식 발음과 문어체다. 따라서 베트남어를 교육적-학술적으로 학습하는 사람은 북부식 발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반면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억양은 남부 억양이다. 호찌민시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경제 활동이 활발하고 인구 비중도 높으므로, 실제 회화에서는 남부 억양을 접할 기회가 훨씬 많다. 남부 억양은 부드럽고 완만하여 듣기에 편안하다는 장점도 있다.
중부 억양은 성조 변화가 크고 음운 변이가 강해 외국인에게 난도가 높지만, 지역 정체성과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언어적 유산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결론적으로, 학습자는 북부식 발음을 기반으로 학습하되, 실제 소통을 위해 남부 억양도 이해하는 ‘이중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6. 다시 하노이 말은 표준인가?
하노이 억양은 베트남어의 얼굴이자 대표 이미지로서 확실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교육과 언론, 행정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꾸옥응으의 음운 체계와도 가장 잘 맞기 때문에 사실상 표준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상의 표준’일 뿐이며, 베트남 정부가 법적-제도적으로 인정한 국가 표준 억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베트남어는 방언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언어다. 하노이 억양은 그중 하나의 중심이지만, 유일한 중심은 아니다. 베트남어는 북부-중부-남부의 언어적 특성이 공존하는 가운데, 문어체와 정서법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유지한다. 이 유연하고 개방적인 표준 체계야말로 베트남어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하노이 말이든, 남부 말이든,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아름다운 베트남어를 존중하고 사용하는 태도이며, 베트남어의 품격은 어느 지역의 억양을 쓰느냐보다 그 언어를 얼마나 성실하게 가꾸고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