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꼬리만큼 남은 세밑이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습격한 2021년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도 팬데믹으로 고통의 파도를 막아내지 못했다.
특히 2월 미얀마에서 일어난 선거 결과를 뒤집는 군부쿠데타는 10개월이 흐르는 동안 미얀마에서 군경의 총격에 의한 희생자는 12월 11일까지 1329명 이상 사망했고, 1만 889명 이상 체포당해 현재 진행중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아세안 학과를 거느리고 있는 부산외국어대 동남아교수들이 ‘2021 아세안 10대 키워드’를 선정했다.
미얀마 ‘쿠데타’, 인도네시아 ‘G20 의장국’, 브루나이의 ‘아세안 의장국’, 라오스 ‘내륙 철도 개통’, 베트남 ‘육체노동자의 도시탈출’, 태국 ‘재도약’, 캄보디아 ‘후계자’, 필리핀 ‘대선- 봉봉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르테의 동맹’, 싱가포르 ‘코로나 정책과 민주주의’ 등이다.
참고로 아세안 10개국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다.
■ 미얀마 <쿠데타>: 아세안의 오랜 전통 내정 불간섭 원칙 균열
동남아 권역에서 한껏 기대를 모았던 미얀마는 G2로 우뚝 선 중국과 G3 인도를 잇는 지정학적 중요성의 부각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와 올 2월에 발생한 쿠데타로 격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아세안의 오랜 전통인 내정 불간섭 원칙에 틈을 보이게 했다. 국제사회의 여론을 잠재우고, 다시 국제사회와 함께할지가 주목된다.
■ 인도네시아 <G20 의장국>: 역사상 첫 의장국 ‘국제무대’ 외교역량 시험대
인도네시아는 2021년 12월 1일부터 2022년 12월까지 G20 의장국을 맡게 된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G20 의장국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인도네시아 외교사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외교적 역량을 국제무대에서 시험해보는 중요한 계기여서 인도네시아 국내적으로도 큰 이슈이다.
■ 브루나이 <아세안 의장국>: 코로나19-미얀마 쿠데타 조정자 역할
브루나이는 2021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았다. 올해 아세안 역내에는 코로나 19 팬데믹뿐만이 아니라 미얀마에 쿠데타가 발생했다. 브루나이는 아세안의 소국(micro state)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미얀마 쿠데타 사태 해결을 위한 조정자 역할을 하느라 분주한 한 해였다.
이 과정에서 브루나이는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비둘기파’의 입장을 견지했는데, 아마도 현 국왕 타계 후 있게 될 브루나이 왕위 세습 과정에서 예상되는 유사한 갈등 해결을 염두에 둔 외교적 입장이었을 수도 있다
■ 라오스 <내륙 철도 개통>: 중국 쿤밍-비엔티안 철도 완공
라오스는 2021년 12월 중국 쿤밍(Kunming)-비엔티안(Vientiane) 철도가 완공됨에 따라 내륙 고립국가에서 내륙 연계국가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라오스 국경인 보텐에서 비엔티안까지 철도 길이는 414km이며 시속 160㎞로 운영하게 되었다. 철도 비용은 총 59억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중국이 부담했다.
철도 완공에 따라 이동 소요 시간과 운송비는 30~40%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라오스 정부는 해외투자 유입과 관광객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으로부터의 과도한 차관 도입으로 중국에 대한 예속이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 베트남 <육체노동자의 도시탈출>: 코로나19 봉쇄로 걸어서 수백km 걸어서 귀향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강력한 봉쇄 및 거리 두기로 방역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베트남이 올해 9월 말부터 봉쇄조치가 완화되면서 호찌민시에 거주하던 육체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호찌민시와 빙즈엉성을 떠나 오토바이, 자전거 또는 걸어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코로나 19 대응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기업의 노동력 부족이 나타났고, 사회적으로는 행정의 미숙이 드러났으며, 도시노동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육체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 태국 <재도약>: 11월 1일부터 43개국 관광객에게 격리 없는 입국 허가
2021년에는 태국의 쁘라윳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가 2월과 9월 각 2회 진행되었으나, 모두 절반을 넘기지 못해 부결되었다.
관광국가 태국도 코로나의 제3차 대유행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의 속도를 내며 이를 타개하고자 하고 있다. 6월 29일 한-호주-아세안 백신 포럼에서 백신에 공평한 접근권 및 경제 회복을 위한 역내 협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2월 10일 기준 1회 접종은 71.4%, 2회 모두 접종 완료는 61.9%, 3회 부스터 샷까지 접종 완료는 5.8%이다. 이에 태국은 11월 1일부로 한-중-일을 비롯한 미국, 호주 등 43개국과 홍콩의 관광객에게 격리 없는 입국을 허가했다.
■ 캄보디아 <후계자>: 훈센 총리, 육군 사령관이자 장남 훈마넷 후계자 지지
2021년 캄보디아는 높은 백신 접종률을 바탕으로 11월부터 위드코로나로의 전환과 함께 일상 회복이 시작된 한해였다.
한편 37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는 훈센 총리의 장남 훈마넷(77년생)을 미래 총리 후계자로 지지하겠다고 연설에서 표명한 것이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훈센 총리의 장남인 훈마넷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군대와 집권당인 CPP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캄보디아 군 최고사령관이었다.
■ 필리핀 <대선- 봉봉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르테의 동맹>: 남-북 가문 러닝메이트
2022년 5월에 치러지는 대통령과 부통령선거에 전 대통령 마르코스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와 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가 출마하였다.
봉봉 마르코스는 필리핀을 21년간 독재 정치한 마르코스의 아들이지만, 여론조사 지지율이 53%로 강력한 대통령 후보임을 증명한다. 아버지 두테르테의 뒤를 이어 다바오시의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사라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봉봉 마르코스와 러닝메이트를 형성하여 부통령으로 출마한다.
필리핀의 오랜 세습정치와 엘리트 정치로 인해 두테르테 가문은 다바오시를 비롯한 남쪽에 선거 기반을 두고 있고, 마르코스 가문은 북쪽에 기반을 갖추고 있다. 두 가문의 동맹을 통해 봉봉 마르코스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어 대선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게 되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에게는 미래의 법적 보복과 정치적 박해로부터 보호받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싱가포르 <코로나 정책과 민주주의>: 규율과 통제 '위드코로나' 탄력적 운영
싱가포르는 올해 6월 선도적으로 '위드 코로나'를 선포하면서 그동안 방역 모범국가라는 찬사가 무색하게 많은 확진자를 낳고 있다. 그런데도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에게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강조하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출입국 규제와 거리 두기 정책은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코로나 정책에 대해 국민으로부터의 저항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1965년 독립 이후 지속된 일당체제 아래의 규율과 통제라는 정치 사회적 특성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2월 9~10일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주도하여 개최한 ‘민주주의 정상회담’에 싱가포르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에서는 민주주의는 유일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형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민주당 정부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2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는 보건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으로 퍼지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정치체제에 따라 정책의 방향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향후 싱가포르의 코로나 정책과 그 결과는 싱가포르의 정치체제와 더불어 평가될 것이다.
■ 말레이시아 <깃발>: ‘자발적 빈자 돕기’ 코로나19 범국가적 극복운동
2021년 7월 코로나19로 엄격한 봉쇄령이 내려진 말레이시아에는 하얀 깃발(Bendera Putih) 캠페인이 확산되었다.
‘백기 운동’으로 불리는 이 캠페인은 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돕는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하얀 깃발을 창가에 걸어두면 시민들이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가져다 놓고 떠났는데, 이러한 활동이 공감대를 얻어 자원봉사자, 유명인, 식품업계까지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범국가적 코로나 극복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검은 깃발 (Bendera Hitam) 운동도 벌어졌다. 장기간 봉쇄조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급증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던 반정부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무히딘 야신 총리는 결국 지난 8월 총리직을 내려놓았다. 작년 3월 1일 취임 한 뒤 17개월 만이다.
[참여교수] 캄보디아: 이미지, 태국: 옹지인, 미얀마: 김성원, 라오스: 이요한, 베트남: 배양수, 싱가포르: 김동엽, 인도네시아-부르나이: 김예겸, 말레이시아: 박광우, 필리핀: 구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