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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수의 Xin chào20] 이름이 바뀌어도 남는 것-카라벨 호텔의 추억

베트남 최고 호텔, 장기투숙하며 베란다서 ‘김치찌개’...안병찬 기자 등 주요인사 미팅

 

호치민시 중심지 시립대극장(오페라하우스) 옆에 카라벨 호텔이 있다. 콘티넨털 호텔과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5성급 역사적 랜드마크 호텔이다. 역사적-사회문화적 의미가 커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이 지역 근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호텔은 1957년 공사를 시작하여 1959년 12월 24일 준공 및 개장되었다. 카티나 퐁시에(Catinat Foncier)사, 에어프랑스, 베트남 천주교 등 삼자가 공동 투자하여 건립되었다. 설계는 베트남 건축가 응웬반화(Nguyễn Văn Hòa)가 맡았다. 당시 최신식 이탈리아산 대리석, 방탄유리, 최첨단 에어컨 및 독립 발전기 시스템 등을 도입한 현대적 건축물이었다.

 

호텔 이름을 카라벨로 지은 것은 당시 호텔 소유주의 한 축인 에어프랑스가 1959년 운항을 시작한 제트 여객기 ‘쉬드 아비아시옹 카라벨(Sud Aviation Caravelle)’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 호텔 1층 동커이 거리 방향에는 지금도 에어프랑스 사무실이 있다. 거의 항상 문이 닫혀있지만, 에어프랑스 간판이 여전히 걸려 있다. 주 중 한두 번 잠깐씩 문을 연다. 내가 처음 방문한 1988년에도 사무실이 있었다. 재건축 및 리노베이션 이후에도 에어프랑스 사무실이 있다. 당시는 왜 이 시내 중심가이고 호텔에 별도의 에어프랑스 사무실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960년대 동안 이 호텔은 호주 및 뉴질랜드 대사관, NBC-ABC-CBS 등 미국 주요 방송사의 사이공 지국으로 사용되었다. 외신 기자들의 허브로 기능했다. 이 때문에 많은 국제 언론과 정치 행사, 기자회견이 이곳에서 열렸다. 대표적으로 ‘카라벨 선언(Caravelle Manifesto)’이 이 호텔에서 발표되어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았다.

 

 

이 선언은 1960년 남베트남 엘리트들이 응오딩지엠 정권의 권위주의와 실패를 비판한 공개 선언문이다. 1964년 8월 25일 오전, 기자 숙소가 있던 514호에서 폭탄이 터져 여러 객실과 주변 자동차가 피해를 입는 사건도 발생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1975년 통일 이후 이 호텔은 국유화(사이공관광공사 소속)되었고, 이름을 <독립(Độc lập, 獨立)> 호텔로 바꿨다. 개방 이후, 사이공관광공사는 외국 투자자와 합작하였다. 1998년에는 대규모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졌다. 기존의 8층 건물에 24층 규모의 신관 건물이 추가되었다. 리노베이션 이후 호텔은 과거 역사적 자산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시설과 국제적 서비스 수준을 갖춘 5성급 럭셔리 호텔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독립호텔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인 <카라벨>로 환원되었다.

 

 

호텔 관리위원회가 낡은 기존 건축물을 허물고 새로 건축하려고 했다. 베트남 천주교회의 강력한 반대(호텔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면 돌려달라고 요구함)로 기존 건물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24층 건물을 신축하고, 기존 건물을 개축하여 사용하고 있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베트남 최고의 호텔이다. 내가 묵을 당시 일반실이 45달러(약 6만 6,847.50원) 정도였다. 지금은 200달러(약 29만 7,100 원)가 넘는 것 같은데, 33년 전 가격이 더 비쌌던 것 같다.

 

나는 1989~1990년 동안에 약 3개월씩 두 번 이 호텔에 장기 투숙했다. 당시 나는 베트남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아 베트남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한국 식당도 없어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큰 어려움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가끔 호텔 베란다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밥은 룸서비스로 주문하였다. 베란다에서 끓이지만, 김치찌개 냄새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는 층마다 서비스맨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 뱅 층 담당은 나이가 좀 든 분이었다. 이분에게 매일 1달러의 팁을 주었다. 호텔 측의 방 점검이 있을 경우, 이분이 미리 알려주었다. 그러면 전기풍로와 코펠 등을 상자에 담아 옷장에 넣어두었다.

 

 

나는 이 호텔에서 1989년에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을 역임한 안병찬 교수님(경원대 언론홍보학과 은퇴)을 만났다. 현대종합상사의 배모 지사장, 삼성물산의 김모 지사장, 효성의 안모 부장, 코오롱상사의 신 과장 등과 당시 한국 최초로 베트남 생사를 수입하던 K실크, D 건설의 임원 등 국내 기업의 지사장과 임원을 만났다. 그리고 로바나의 송용등 사장, 호주교포 김일정 사장 등을 만났다.

 

 

카라벨 사이공은 1959년 개장 이후 전쟁기 외신기지이자 국제 교류의 장이었다. 정권 변화 속에서도 이름과 위치를 지켜온 역사적 건물이다. 1990년대 말 이후의 리노베이션으로 현재는 관광과 비즈니스 모두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여전히 사람과 시대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배양수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yangsoobae@gmail.com

 

배양수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를 졸업하고,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트남 1호 한국유학생이자 1호 박사다.

 

베트남 문학작품인 『끼에우전』과 한국의 『춘향전』을 비교한 석사학위논문은 베트남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과에서 100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본주의권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이례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부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 『중고등학교 베트남어 교과서』, 등의 저서와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등의 번역서가 있다.

 

2024년 12월 24일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30주년 기념식 및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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